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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명 아가페선교교회
설교자 강진구 목사
성경본문 요한복음20:1-10

새 시대 새 출발(20:1-10)- 강진구 목사


▼동영상설교보기



새 시대 새 출발(20:1-10)

아가페선교교회 2017. 4. 16 부활주일설교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를 바꾼 엄청난 사건입니다. 가장 기쁜 날이며, 우주적인 대 사건이요, 죄와 사단의 권세를 부수고 승리한 위대한 날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다면 사단은 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떠들썩하게 보내면서 부활절은 가리워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부활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어떤 위대한 영웅이나 성자도 교주도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2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βλεπω see)” 지금 요한의 관심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많이 죄 사함을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법입니다. 마리아에게는 주님을 사랑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7 귀신이 들려 문둥이가 되어 베다니 문둥이 촌에 살았습니다(8:2). 주님은 이 여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에 세상 어느 누구도 이 여인만큼 슬픔에 젖어 있는 여인은 없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십자가의 현장을 이틀이나 지키고 있었고, 안식 후 첫날 아침(16:2), 아직 어두울 때에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사나운 로마의 군인들에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28:2) 아직은 큰 지진이 이후이기 때문에(28:2) 무시무시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여자의 몸으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만큼 주님께 은혜를 입었고,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주님의 시체를 도둑맞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슬픔의 여인 마리아는 놀라고 무서워서 급히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20: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마리아가 전한 소식은 너무나 놀라운 소식이어서 믿지 못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여자는 증언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진실은 두 명의 증인이 있어야 확증될 수 있습니다.

(20: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베드로보다 요한이 앞서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요한이 베드로보다 젊고 달리기를 더 잘했을지 모릅니다.


(20:5)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see)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요한이 먼저 도착했으나 무덤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요한은 굼뱅이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증인은 두 사람 이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부활하신 주님을 찾으려하지 않고 몸을 구푸려빈 무덤을 확인하려고 하였습니다.

 

(20:6)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look) 세마포가 놓였고 여기서 요한과 베드로의 성격과 기질이 다름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중하고 온화한 성격의 요한은 무덤 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성급한 베드로는 무덤에 들어가 확인하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20: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5절에 '보다'(βλεπω look)는 말과 6절의 '보다'(thinking 집중해서 보다)는 말이 다릅니다.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수건도 가지런히 개켜(둘둘 감겨 있다) 있습니다. 주님을 쌌던 수건이 그대로 있는데,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 그대로 빠져나간 것입니다. 이는 명백히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고, 지옥의 문을 부순 영광스런 흔적입니다.


(20: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know) 믿더라 요한은 비로소 마리아가 전한 내용을 믿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5절에서 처음에는 대충 세마포를 보았지만(βλεπω), 무덤 안에 들어와서 둘둘 감겨진 수건을 보고서(ειδω)는 주님의 부활하셨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세심한 요한도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요한복음을 기록한 저자가 보아너게(우뢰)란 별명을 가진 요한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때의 어리석음을 감추지 않고,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보았고, 또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지 못하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제자들은 마리아를 혼자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곳에 주님의 시체는 없고, 놀랍게도 두 천사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위로하는 말을 전하지만,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물론 그녀의 울음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지만, 이는 마리아의 불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덤이 비어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고서 많은 세월을 눈물 흘리며 슬퍼했습니다. ‘모든 일이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42:36).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아들 요셉을 잃은 야곱은 살아 있으나, 산목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야곱은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성공한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공연히 낙심하고 슬퍼할 때가 많습니다. 전화기를 내 손에 들고서도 전화기를 찾으러 다니는 것처럼, 내가 찾는 것은 손에 쥐고서도 그것이 없다고 슬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두려워하는 일 중 대개는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들이며, 우리의 눈물 중 대부분이 공연히 흘리는 것들입니다. “사람의 생애에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면서 평생을 두려워하는 것이 인생이다”(마크 트웨인). 걱정할 일이 없으면 결혼도 안 시킨 아들의 손자까지 걱정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마리아야!’(20:16) 하고 부르시는 주님의 말씀은 우는 자를 기뻐하며 예배하는 자로 바꾸었습니다. 주님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의 권능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의 잔이 넘치게 됩니다.

 

(20:15)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베드로와 요한은 천사도 만나보지 못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들을 만나고, 승천하시기 전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곧 승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들었고, 이 중요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두 증인(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확인했고, 마리아가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의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믿고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

죽음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때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삶 속에 짜 넣어진 것이어서 우리의 삶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세력 아래서 태어나서 평생 죽음에 의해 지 배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아담이 범죄 함으로 받은 형벌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인간은 본래 죽게끔 지음을 받았습니다. "산 사람치고 어느 누가 죽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89:48)" 인간은 원래 죽도록 지음을 받았음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영적 생명의 종말인 죽음

아담의 범죄 후에 찾아온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으로부터 돌이켜 멀어지신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는 죽음의 공포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셨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고 그들을 만나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죽음은 인간을 지배하게 됩니다.

 

죽음의 종말인 부활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것은, 그가 죽음의 세력을 꺾으실 수 있는 분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제까지 우리를 지배하던 모든 죽음의 세력을 멸망케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과 우리를 막고 있던 죽음의 장벽이 철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진 것입니다.

부활은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가 우리를 다시 찾아오심을 뜻합니다. 끊어졌던 전기가 다시 이어져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끊겼던 수도관이 이어지면서 물이 다시 나오는 것처럼, 단절되었던 생명의 줄이 다시 이어지므로 우리 속에 생명이 넘쳐흐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되고 있는 현재적인 사건입니다. 죽음은 더 이상 우리의 전인적인 삶을 억압할 수가 없습니다.


부활주일은 연례행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찾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부활의 신앙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덤 안을 살피는 자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영혼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죽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부활의 아침입니다. 부활의 기운을 호흡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죽음의 잔재들을 말끔히 씻어 내십시오. 여러분 속에 있는 죽음의 독소인 불안과 걱정과 근심들을 모두 쫓아내십시오. 생명의 주이시며 역사의 주가 되시는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다시는 죽음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였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제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누가 무슨 소리를 한다 할지라도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 부활을 믿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고전 15:19). 저마다 핑계를 대고 있지만, 분명한 이유는 십자가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 아래에서 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부활의 능력과 소망을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들이 많은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무기력한 것은 부활을 믿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이 부활을 전하고, 그런 자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고, 이 땅에 살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부활에 있습니다. 죽음은 결코 우리의 희망이 아닙니다. 부활은 신자를 힘차고 용기 있게 만듭니다. 부활은 죽음의 직전에서도 절망의 잔을 던져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부자와 왕들은 무덤을 거대하게 만들었습니다다. 죽음의 공포가 두려워 순장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사치하지 않았고, 무덤을 꾸미지 않았고 열심히 일해서 자본을 모아 기업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인도의 전 수상이었던 네루는 수 천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을 교회가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칭송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라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지금도 도처에서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역사상 세계의 발전에 가장 기여한 것은 부활의 신앙을 가진 기독교입니다.


마리아와 같이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말씀을 사모할 때에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 있을 때에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슬픔에 젖어 낙심하고 두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될 때에 그 슬픔과 눈물은 기쁨과 찬송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면, 자녀문제, 건강문제 등은 사실 시시한 일입니다. 부활의 주께서 책임을 지십니다. 생명의 씨가 저들에게 있으므로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자라갈 것입니다. 물론 고난과 시련이 있으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오히려 요셉의 견강한 가지처럼 세력을 떨쳐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신앙은 역경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서도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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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선교교회(담임: 강진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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