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삽시다!-정길영 목사

by wgma posted Sep 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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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삽시다!

  정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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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7  02: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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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북서쪽으로 42km 떨어진 호카 곶은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으로, 절벽 위에는 등대와 기념비가 서있습니다. 기념비에는‘육지의 끝, 바다의 시작’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그곳이 땅끝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다 건너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1492년에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호카 곶을‘육지의 끝’ 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바다 저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너머에 분명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한 사나이는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해 당시 사람들을 꿈에 부풀게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희망을 주는 사람과 낙심을 주는 사람입니다. 희망을 주는 사람은 목표가 분명한 삶을 삽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목표를 놓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꿈을 나누어 줍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희망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 온 세상이 자기 앞에 엎드리고 절할 것을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 덕분에 빈곤과 기근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1997년)’라는 영화는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하고 부부가 직접 출연한 영화입니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비영어권 최초로 남우 주연상을 획득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39년,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지배하던 이탈리아입니다. 주인공 귀도 오르피체는 유대계 이탈리아 청년입니다. 새로운 삶을 찾아 삼촌이 살고 있는 도시에 왔다가 운명처럼 초등학교 여교사인 도라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 조슈아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이탈리아 점령이 시작되면서 귀도의 가정에 불행이 닥칩니다. 유대인인 귀도와 아들 조슈아가 포로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유대인이 아닌 도라는 독일군을 설득해 남편을 따라 포로수용소로 갑니다. 수용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귀도는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게임이라고 아들을 속입니다. 자신들은 특별히 선발된 사람이라며 술래잡기 놀이를 해서 1,000점을 제일 먼저 따는 사람이 1등상으로 진짜 탱크를 받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조슈아는 귀도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습니다. 두 사람은 아슬아슬한 위기를 셀 수 없이 넘깁니다. 독일이 패망하고 혼란한 와중에 탈출을 시도하던 귀도는 안타깝게도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총살당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끝까지 믿은 아들 조슈아는 살아남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줄 모르는 조슈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연합군의 탱크가 게임에서 이겨서 받게 된 진짜 탱크라고 생각합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를 그린,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사실 인생은 행복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사람들마다 크고 작은 역경을 경험합니다. 왜 역경을 겪어야 하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여전히 하나님께서 고통을 허용하시며, 역경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게 하시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이러한 역경조차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시며,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경이 다 이해되거나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역경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활동한 주전 587년의 일입니다.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기까지 일 년도 남지 않은 때였습니다.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이미 바벨론의 군대가 포위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유다의 멸망을 선포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유다 왕국은 멸망하고 유다 왕 시드기야는 잡혀 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사촌 하나멜이 찾아와 자기 밭을 사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가까운 친척끼리 땅을 사고 파는 법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찾아와서 위로는 못할 망정 자기 밭을 사라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멜의 밭을 주저하지 않고 삽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라고 야단을 쳐서 보냈을 것입니다. 실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 밭을 사라고 이미 지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고 유다 왕국이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유다를 포기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유다가 회복될 것이며, 그때에는 예레미야가 사둔 밭이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눈에 경제, 정치, 교육, 사회 정의, 때로는 신앙까지 희망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말하기보다는 “어렵다,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희망을 창조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면서 밭을 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내일의 희망이라는 밭을 믿음으로 사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당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었기에 돈을 주고 내일의 희망을 산 것입니다. 그처럼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이라도 절망하지 말고, 힘써 내일의 희망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희망만은 사야 합니다. 희망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

1908년, 베를린에서 폴란드 출신의 청년이 빚에 쪼들려 호텔방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청년은 다시 태어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다시 살아났구나! 다행이다!” 밖으로 나가 보니 조금 전과는 달리 세상 모든 것이 희망차 보였습니다. “그래, 한 번 열심히 살아보자.” 하고 결심하고 그 청년은 노력해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쇼팽 음악의 최고 권위자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은 지금 살아 계시고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분을 모시고 함께 가는 것이 최고의 희망이요, 승리의 길입니다. 희망찬 새해에 예수님과 함께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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