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성경바로읽기 33
마태복음 4:1-11의 시험의 내용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태4:1)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고 마귀에게 3가지 종류의 시험을 받으시면서 시작된다. 이 시험의 장면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실패한 사건과 대비된다. 예수님은 인간의 대표자로서 마귀의 유혹을 이긴다. 그렇게 함으로 인간들이 실패한 것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의 내용은 모든 인간들에게 언제나 다가오는 시험의 내용이다. 그 시험의 내용을 일반적으로 물질과 명예와 권력 3 가지를 말하긴 하는데 정말 예수님이 당하신 내용이 그러한 것인가? 이제 우리 인간이 항상 부딪히게 되는 시험 또는 유혹의 내용을 어떻게 바로 읽을 것인가 살펴보자.
첫 번째 시험의 내용: 유혹은 언제나 내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것 또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가지고 다가온다.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 4:2-3)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시고 주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당시 가장 필요한 것은 주린 배를 채울 떡이었다. 인간이 가장 취약한 부분은 바로 물질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돈을 가지고 다가오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결코 돈의 문제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유혹은 언제나 지금 내가 가장 필요한 것 또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더 나아가 내가 지금 하고 싶어하는 것을 가지고 다가온다. 어떤 이에게는 그 필요한 부분이 체면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자식일수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취미생활일수도 있다. 이민의 삶에서 늘 같은 일의 반복이 자신의 삶을 지겹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은 골프장에서 자신의 스트레스도 풀고 할 수 있다. 사탄은 이러한 부분을 노린다. 골프라는 취미생활을 주일날 하도록 하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었다. 이삭을 얻은 기쁨은 잠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게했다. 이삭은 마귀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자리에서 무너지게 하는 것일 수 있었다. 이에 하나님은 이를 깨우쳐주기 위해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다. 이것이 예수님이 받은 첫 번째 시험의 내용이다. 예수님은 배를 주렸고 그래서 배를 채울 떡이 필요했고, 시험하는 자 마귀는 예수님이 그때 당장 필요한 떡의 문제를 가지고 시험한 것이다. 이 떡을 괄호로 만들어 거기에 지금 당장 내가 필요한 것, 소중하게 여기는 것, 또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집어 넣어보라. 시험은 그러한 것을 가지고 다가온다. 그것이 명예일수도 권력일 수도 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서 ‘재물’에 대한 헬라어는 ‘맘몬’ 곧 가장 큰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정확한 번역은 하나님과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이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서 가장 큰 것으로 등장하는 것이 돈이다. 누구나 돈의 유혹이 오면 그것을 뿌리치기 힘들다. 그래서 재물을 하나님과 대비하여 적어놓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시험의 내용: 유혹은 마치 나를 위한다는 듯이 다가온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게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마태 4:5-6)
이는 명예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유혹은 어떠한 방식으로 다가오는가의 내용이다. 유혹은 언제나 나를 위한 듯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졌는데 몸의 상처 하나 없이 천사가 떨어지는 예수님을 받드는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여기지 않겠는가? 왜 자신이 메시야되심을 어려운 길을 택하여 보여줄려고 하는가에 대한 유혹이다.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더라도 많이 벌어서도 구제 사업도 하고 얼마나 좋은가고 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모으라고 유혹한다. 주일날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을 당하면 더 많이 벌면 자신도 좋지만 헌금도 교회에 더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고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주일날 가게문을 여는 정당성을 찾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당신에게 좋은 것이다하면서 유혹은 다가온다. 자신의 이익이 없는 것에는 유혹은 먹히지 않는다. 그러기에 유혹은 나를 위한 듯이 다가 온다.
세 번째 유혹의 내용: 유혹은 타협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다가온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 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 4:8-9)
이 시험은 권력에 대한 시험이 아니다. 유혹은 언제나 타협의 조건을 걸면서 다가온다는 것이다. 돈으로 결코 유혹당하지 않는 어떤 자가 아내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거릴 때 유혹은 타협의 손길을 내밀며 다가온다. 밀수품을 어디까지 운반해 주면 그 수술비를 주겠다고 타협의 조건이 들어온다. 잘못된 줄 알지만 그 타협의 조건을 거절하기 힘들다. 유혹은 언제나 이런 타협의 조건을 내걸고 들어온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생애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 일을 쉽게 이룰 수 있는 터협점이 예수님에게 제시되고 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그 무엇을 이룰 수 있는 쉬운 길 또는 도저히 그 일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서 고민할 때 유혹은 그 틈새를 비집고 타협을 제사하면서 다가온다.
이렇게 유혹은 가장 필요한 것으로, 마치 나를 위한 듯이, 그리고 타협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다가온다. 이것을 요한일서 2:16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의 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내가 지금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육신의 정욕), 내가 보기에 좋도록 하고자 하는 것(안목의 정욕) 그리고 자신이 자랑하고 싶은 것 그래서 이루고 싶은 것(이생의 자랑)을 통하여 유혹은 다가온다.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의 내용과 닮아 있다. 그런데 유혹의 결과는 어떠한가? 그것을 마귀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시험하는 자는 마귀다. 마귀는 ‘파괴하는 자’이다. 유혹이라는 덧에 걸리는 순간 당장은 좋아 보이더라도 결과는 삶의 파괴다. 유혹은 그 내용이 아무리 달콤하더라도 그 길은 멸망의 길로 성큼 다가서는 길이다. 단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나와 관계하는 모든 자도 그 파괴의 길에 함께 데리고 들어가는 결과가 주어질 수도 있다. 아담이 유혹에 넘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 아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미친 결과는 어떠했는가? 예순님은 아담과 달리 승리하셨다. 그 결과 인간에게 희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