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목적은 귀한 생명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절대적인 사역이다

by wgma posted Oct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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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목적은 귀한 생명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절대적인 사역이다

 

담대하라 네가. . .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행 23:11). 베드로는 한 번도 로마를 방문했다는 성경에 기록이 없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에게 소개를 하셨다(행 9:15).

 

바울의 목적지는 로마라는 사실을 주께서 말씀해 주셨다. 오늘날 복음 전파를 위해 서 세계 각처로 흩어져 전하고 있지만 바울과 같이 분명하게 사역지 까지 응답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선교사들이 얼마나 있을까?

 

언어가 되기 때문에 혹은 파송 교단과 후원교회가 지명하는 곳으로 향해야하는 명령에 따라 나아가는 선교사들이 대부분 이 아닌가? 그러나 일평생 선교지에서 사역하기로 다짐하고 갔으나 타문화에 적응하지 못 하고 심지어 자녀들의 교육문제 등으로 선진국으로 주소를 변경해서 목적 한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역자들의 고심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인가?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직접 임명받은 복음의 일군이기 때문에 꼭 그곳으로 가야만 하지만 오늘날 파송 받아가는 선교사는 시대의 상황에 따라야 한다는 유치한 변명을 하는 자들도 없지 않다. 선교의 목적은 귀한 생명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절대적인 사역이다 선교지의 문화에 잘 적응해야하고 그 나라의 교육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서 대를 이어 그곳에 정착해야 할 각오로 출발하지 않는다면 이미 선교의 목적에서 이탈된 것이라고 볼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바울은 로마까지 가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행 27:9-26. 고후11:16-33). 심지어 40여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 는 먹지도 아니 하고 마시지도 아니 하겠다고 하면서 사역 지로 향하는 길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바울과 같이 선교지 로 향하는 진정으로 헌신된 사역자들이 요구되고 있다.

 

서울에 양화진 외국인 묘지가 있다. 이곳 에 한국선교 초창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활동하다가 남긴 외국선교사들의 무덤들이 있다. 지금도 그 후손들이 한국에서 교육계나 의료계 혹은 선교활동과 사회 각 분야에서 헌신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이땅에 생명들을 살리 기 위해서 오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 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를 흘려 죄인들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셨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된 사역자들 행전 1장8절의 말씀대로 순종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쓰임 받아 부끄럽지 않는 생애를 후배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면서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일군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나자신 부터♪♪♪ 아멘. 할렐류야 !!!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 17:22)

 

종교성을 가진 증거로 종교심을 발휘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과 나라마다 종교가 있다. 특정종교로 세워진 나라도 있다. 원시적인 종교를 가진 나라들도 있다.

 

문명이 발달한 나라와 개발도상 국가 혹은 아직도 현대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나라를 비롯해서 지구촌에는 각종 종교로 삶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첨단과학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종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종교와 정치. 교육. 과학. 경제 분야 그 외 여러면으로 종교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마을의 거리나 산이나 바다까지 종교 행위의 모습으로 얼룩진 흔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느 날 바울이 보았던 아덴 사람들이 종교성으로 얼룩진 거리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나라마다 종교의 특색이 있다. 기독교 외에 모든 것은 우상종교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선교지마다 전통적으로 지켜오는 종교에 대해서 원시종교다, 우상이다. 사단의 종교다. 범신론이다. 마음대로 진단해서 이방인으로 취급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 시켜버리는 일들이 있다면 과연 옳은 일인가 ?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을지는 모른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독생자 예수를 죽게 하심으로 이루신 복음을 어떤 종교를 가졌든 관계없이 사역자들에게 사명을 주신 것이다. 아무리 종교성이 강하고 많아도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들이다.

 

일본에는 팔백만 귀신(八百万神神=야요로즈가미가미)을 섬기고 있다. 일본의 인구는 1억2천7백만이지만 종교 인구는 2억5천만이라고 한다. 아직도 99.7%가 우상을 섬기고 사단의 종이 되어 웃음이 없고 내세의 소망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세가 아니고 내세에 대한 표현으로 종교 행위를 가지게 된다. 물론 현세에서 기복에 대한 관심으로 종교심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종교성으로 가득한 거리의 모습과 우상을 섬기는 종교인들에게 바울과 같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면서 사명자의 본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영분별의 은사로 잘못된 종교에 시달리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역자의 본분을 잘 감당해서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일군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멘. 할렐류야 !!!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행 18:5)

 

매년 신학교문을 나서는 졸업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각 교단마다 배출해 내는 일군들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역지에서 힘 있게 기쁘고 즐겁게 담대하게 쓰임 받고 있을까? 졸업 후 목사 안수 받고 사역지에 부임 하지만 신학지식으로 다듬어진 실력을 가지고 원멘쑈로 강단에서 목소리를 조절하면서 자기 관리로 점수를 높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쓰임받기 원하는 사역자들은 바울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말씀에 붙잡힌 바울은 전통적 율법종교에 빠진 유대인들에게 담대하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 했다(행 18:5).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바울을 유대인들은 대적하여 훼방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옷을 떨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하고 떠나갔다.

 

그러나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행 18:5-8)고 했다. 교역자라고 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바울과 같이 율법의 지식이 있고 신학교에서 휼륭한 스승(가말리엘)을 통해서 많은 학문으로 실력을 쌓았지만 그것들을 배설물과 여겼다. 그리고 복음의 홱심인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담대하게 전하였다. 오늘날 지식적으로 배운 신학으로 무장된 사역자들 가운데는 예수 십자가 사상으로 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지식 혹은 자기의 경험과 각가지 예화라는 썀으로 짜집기하는 설교가 대부분이 아닐까?

 

율법에 붙잡힌 신학지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바울과 같은 사역자 모두가 되어 신학과 영적으로 혼탁한 이 시대를 바로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일군들이 되어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으면 하는 선한 욕심을 가져 본다. 아멘 할렐류야 !!!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행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라고 했다. 그 이 유는 말씀을 받는 테도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받은 말씀이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인가를 날마다 살피면서 생각 한 것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 예배당에서 말씀을 받은 신자들이 과연 설교가 성경이 말씀하신 내용인가? 날마다 연구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설교를 통해서 성경이 무엇을 말 하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분들이 몇 분이나 될까?

 

바쁘다. 시간이 없다. 들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목회자들이 기도하고 준비한 말씀인데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설교를 비판할 수 있는가? 수십 년 교회당교회 문화에 습관화 되어 버린 것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습관화 되어버린 고질적인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종교생활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빌 4:9). 그리고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고 바울은 말했는데 오늘날 교회당교회 문화로만 만족하고 말씀의 교훈을 무시해 버리고 편리주의로 교인생 활로 만족한다면 젠틀멘 신앙인은 아닐 수도 있다

 

신앙의 년조 만 자랑하지 말고 직분만으로도 만족하지 말고 영성과 지성과 인성을 갖춘 실력 있는 베뢰아 사람과 같이 신사적인 성도가 되어 언행심사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 들으며 모든 영광 주님께 돌리는 실력자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멘 할렐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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