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 목사[청년들이여 일어나십시오]

by kim posted Feb 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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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일어나십시오.  (눅7:11-17)


엄영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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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여러분, 청년들의 세상입니다. 세상이란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느냐에 따라 좋은 세상도 될 수 있고, 불안한 세상도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산다면 그 사회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며, 나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라면 당연히 나쁜 세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는 청년들의 꿈과 이상이 실현되는 아름다운 세계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는 청년의 시기였습니다. 사람의 어느 시대라고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겠습니까만 아무래도 청년 때는 가장 가치 있어 귀하고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회의 청년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젊다고 하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지만, 청년들의 앞에는 수많은 위험이 따르고 청년들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문화에 빠져 들어갈 수 있는 위험이 따르고 있습니다. 청년의 시절은 이제 어른들의 간섭을 벗어나면서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은 선택에 따르는 책임까지도 자기의 몫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청년의 때에 믿어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늙어서 힘이 없고 아무런 낙이 없다고 할 때에도 물론 예수 믿어야 하지만, 일찍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만큼 크신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종 다윗은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라(시119:9)"고 하셨습니다.


현대는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청년의 때는 악에 물들기 쉬운 때입니다. 악은 달콤한 사탕과 같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광명의 천사와 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죄악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대단히 힘이 듭니다.


저는 이원설 박사가 쓰신 {아침을 준비하는 자는 늘 깨어 있다}는 칼럼 집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글 가운데 비전의 힘(The Power of Vision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잠29:18절의 말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라는 명언입니다. "묵시"라고 했지만 '환상', '이상', '비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박사는 "비전이란 우리의 정신세계의 눈을 가지고 볼 수 있는 분명한 미래에 대한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비전은 결코 주어진 상황을 가만히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비전은 저 너머에 존재하는 부분까지 확장해 나가기 위해 실제적으로 뻗어나가는 현실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글을 읽다보니 "청년 시절엔 하루는 짧고 한 해는 길다. 노년 시절엔 하루는 길고 한 해는 짧다. 청년은 희망의 그림자를 가졌고 노인은 회상의 그림자를 가졌다. 노인은 세월이 빠르다고 말하고 청년은 앞길이 창창하다고 말한다."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그냥 내버려두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사용함으로써 무엇인가 족적과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미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어제 흐르던 강물이 오늘의 강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이 더 여백이 남아있고, 시간이 빨리 가지 않는다고 느끼는지 모르지만, 헤프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를 길게 사용하고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예수님이 나인이라는 성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은 생명의 행렬이었고, 그들은 죽음의 행렬이었습니다. 죽은 자는 청년이었고, 한 과부의 독자였습니다. 성의 많은 사람들도 여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함께 따라 나오고 있었습니다.


죽은 청년은 여인의 독자였으니 남편을 잃은 후 가난과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오직 소망이었던 아들이었습니다. 이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이처럼 청년의 죽음의 가정의 슬픔이요 사회의 슬픔이며 청년의 죽음은 교회의 슬픔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인에게 먼저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 인생의 절망 한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의 위로가 되셨고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시고는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주님은 죽은 청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죽었던 청년을 살리셔서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 청년이 살아나자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이 됩니다. 어머니는 기쁨과 감격이 넘쳐나고 잃었던 희망이 되살아났으며 눈물을 흘리며 따르던 그 행렬은 축제의 행렬로 바뀌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난 청년은 새 생명을 얻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어머니에게 효를 행하고  그 마을에 모든 이들을 위한 헌신을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람 된 도리도 감당해야 합니다. 나 한 사람 다시 생명을 부여받았다는 기쁨에만 들떠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다가 여러분의 생명을 마쳐야겠습니까?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소명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겨우 나 자신 먹고 출세하고 놀다가 가는 불행한 지식인들이 되지 말고, 불쌍한 여인들, 불쌍히 마을 사람들, 죽음 앞에 아무런 희망이 없는 수많은 군중을 위하여 생명의 양식을 전하는 살아있는 청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엄영수 목사의 "산골마을 이야기" 블로그, 밝은소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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