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산상설교 읽기 17

by kim posted Feb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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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목사의 산상설교 읽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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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백성, 삶의 원리

 

                                                       하나님나라의 백성

 1.하나님나라 백성의 인격(팔복 5:1-10)

2.하나님나라와 세상의 관계(5:11-16)

3.하나님나라 백성의 삶

(1)삶의 원리(5:17-43) - 사랑

(2)삶의 목적(6)

(3)삶의 기준(7)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 곧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자들인 성도의 삶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산상설교이다. 하나님나라 백성 곧 성도들의 인격은 어떠해야 하는가?(팔복)과 성도와 세상과의 관계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하나님나라 백성(성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시면서 첫 번째로 삶의 원리를 마태복음 5장에서 다루고 있다.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곧 하나님과 같이 온전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결코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명하시지 않으신다. 그럼 어떻게? 율법을 지킴으로? 당연히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율법은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기준은 행위로뿐 아니라 생각의 죄까지 포함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여기에 예수님은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인간은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율법기준을 지킬 자가 없음을 말씀하신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질 수 있는가?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신다.


힌트가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대목이다. 신약에 와서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여기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모습은 엄격함과 인자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무엇을 하지말라 또는 하라고 했을 때는 이미 그 말씀 안에 아버지의 사랑하심이 포함되어있다


자녀가 행복하게 사는 길을 제시하고자 함에 있다. 마찬가지로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다. 법이란 상대방을 죽이고자 함이 아니라 살리고자 함이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시켰다고 말씀하신다. 이와같이 하나님 나라 백성인 성도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누구나 사랑을 한다. 당시 유대인들이 죄인으로 취급했던 세리도, 결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방인들도 사랑을 한다. 다시 말하면 악인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나에게 좋게 대하는 자를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예수님은 이것은 사랑함이 아니다고 말씀하신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자라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함이다고 말씀하신다.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결혼을 한다. 결혼 전까지는 분명 감정적인 사랑이 우선한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순간, 결혼식장에서 끝까지 사랑하겠노라고 서약하는 그 순간부터 사랑함은 감정이 아닌 의지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결혼서약을 하는 순간부터 진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감정으로 불타오르는 사랑이 결혼을 얼마동안 유지시켜 줄 수 있는가? 왜 나는 내 아내를, 내 남편을 사랑해야 하는가? 답은 내가 사랑해야 할 아내이고 내가 사랑해야 할 남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과 답은 누구에게라도 적용된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랑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강도를 만난 자에게 한 사람이 다가온다. 강도를 만난 자는 유대인이고 그에게 다가 온 자는 사마리아인이다. 이 둘은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자들이다. 그런데 원수라고 여겼던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를 만나 죽게된 유대인을 구원해 준다


왜 사마리아인은 자신을 원수로 여기던 유대인을 구원해 주었는가? 이유는 아주 단순 명쾌하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찌했든 우선은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라도 아까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는가? 내가 착해서? 아니다. 단지 하나님이 사랑해야 할 대상이 나였기 때문이다.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예수님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원수라고 밝혀 말씀하신다. 44절에 있는 말씀이 누가복음 6:27-28에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로 되어 있다.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며 모욕하고 핍박하는 자, 그가 원수이다. 39-41에 따르면 이들은 악한 마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자이기도 하다. 때로는 무모하게 때로는 억지를 부리며 때로는 황당하게 내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 대하여 42절에서는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축복해주고 위하여 기도해 주라고 하신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신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45절에서 내가 원수라고 여기는 그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해와 비같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내가 원수로 여기고 있는 그 자를 위해서도 죽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에게 원수같이 악하게 다가오는 자라도 내가 사랑해야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정말 어렵다! 그런데 이 지독한 사랑을 해야 나는 하나님에게 이제는 됐다는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칭해질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사랑을 의지를 가지고 시작할 밖에. 참참참, 잊지 않았다면 이렇게 주기만 하는 사랑을 할 수 있는 길을 이미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5:6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5:6)라고 했다.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내게 주어진 그 높고도 깊고 넓으신 사랑에 녹아지는 것이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라. 이 길밖에는 없다. 그리하면 자연스럽게 긍휼함과 청결함 그리고 마침내 화평케 하는 자의 길을 걷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이루는 자가 된다. 하나님나라 백성인 성도의 삶의 원리는 사랑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온전해지며, 그렇게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걸어가게 된다.

김성철 목사(예승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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