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무엘 목사 [주안에서 행복합시다] 갈 5:16-26

by kim posted Jun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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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주안에서 행복합시다] 5:16-26

2016619일 주일 (볼리비아 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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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16)

 

성령님 충만히 받아 권능을 얻어 주님과 매일 매순간 동행하자!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소망합니다. 그 행복을 어떻게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무엇이고 그 행복을 찾기 위해서 무엇을 활용하면 좋을 것이가에 대한 연구가 요즘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최근 긍정 심리학의 발전으로 연구되어져 왔습니다. 행복에 대한 관심은 고대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종교인, 그 외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하면서 공통점으로 자기만족, 자기충족, 자기실현을 달성하려는 행복과 관련이 있다고 이끌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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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UN 에서 발표한 “2015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보니 세계 158개국 상대로 국민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총 5.9점으로 세계에서 47번째로 행복한 나라입니다. 일본이 46번째이었습니다. 2013년 보고서에서는 41위였습니다. 1년 사이에 6위가 하락되었답니다.

 

우리나라는 요즘 더욱 스트레스가 높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넘쳐나서 행복지수가 낮다고 합니다. 몇해 전 실시한 경제협력개발기구인(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에서는 조사를 한 대상국 중에서 호주가 1위이고 한국은 20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1.5명으로 OECD평균 (11.7AUD)의 두 배이며, 어린이의 행복지수로는 OECD회원국 중에서 꼴찌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면 분명 우리나라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은 요즘 행복하십니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을 발견해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을 앗아가는 요인들이 많습니다.

 

행복 전도사라고 불리 우는 한 작가가 자신의 처한 삶에 의해 결국 자살을 선택하여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많은 저작물을 남기고 많은 강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생각하기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이 사건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과연 행복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행복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행복이란 멀리 떨어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이는데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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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파랑새에서 주인공들이 찾아 나서는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하고 결국 파랑새는 다른 곳이 아닌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잇습니다. 주인공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성탄절인데도 성탄절 장식과 맛있는 음식을 누닐 수 없는 환경에 사는 남매였습니다. 그런 환경에선 행복을 느끼지 못했지만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난 뒤 변합 없는 환경에서는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미 파랑새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행복을 먼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행복의 원천이시며 늘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를 깨닫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을 떠난 삶은 불행이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행복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좇아 사는 삶은 행복이 넘칩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을 좇아가면 불행이 충만합니다. 오늘 주시는 갈라디아서 516-2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다.(합독)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중세 신학의 기초를 제공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Nikomac hische Ethik)에서 행복은 모든 인간인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제시하며, 행복으로 부를 수 있는 인간의 최종적인 목적은 완전하고’, ‘스스로 충족하는 것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노력하여 이 세상에서 행복을 소유 할 수 있고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세미나에서 강사가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풍선을 분 뒤 거기에 각각 자기 이름을 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풍선을 다른 한 방에 집어넣고 잠시 뒤, 자기 이름이 쓰인 풍선을 5분 안에 찾으라고 주문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풍선을 찾느라 서로 부딪히고 밀리며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5분이 흘렀지만 단 한명도 자신의 풍선을 찾지 못했습니다.

 

강사가 이번에는 아무 풍선이나 집어 거기 적힌 이름을 보고 그 사람에게 주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이 자기 풍선을 찾게 되었습니다. 강사가 강연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실시한 풍선 찾기는 우리네 삶과 똑같습니다. 모두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아다니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지요. 우리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함께 있습니다. 그들에게 풍선을 주듯 행복을 나누어 주십시오. 어느 순간 여러분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인터넷 자료, 2015)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연애하고 결혼하며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고 출가시킵니다. 자녀의 행복을 통해 부모가 행복하고, 배우자가 행복함으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행복을 얻기 위해 친구를 사귀고 특정 이익공동체에 소속하여 활동하며 공동 행복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저축하여 여행을 하기도 한다. 행복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정서는 메말라 가고 이웃과의 벽은 높아가며 대화가 단절됩니다. 생활은 편리해 지는데 행복지수는 낮아집니다.

 

영국 격언에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살 수 없다. 돈은 집을 사도 행복은 살 수 없다고 합니다. 행복은 돈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와 안식에서 시작됩니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울 때도 주님만 바라보고 나갈 때 행복했습니다.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도 불행했습니다. 인생 말년에 전도서에서 자신의 인생을 참회합니다. 그의 결론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12:13-14) 그의 잠언서는 후배들에게 참행복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많은 경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행복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집과 선입감으로 파랑새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합니다. 남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열심히 가집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녀임을 망각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을 좇아 하는 삶을 포기하고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추구하다가 지키고 넘어지고 맙니다.

 

오래전 한경직 목사님으로 부터 들은 예화입니다. 한 소년이 호수가에서 살았습니다. 오후시간이 되었을 때 서쪽으로 기울이는 태양을 등지고 보니 자신의 그림자가 있어서 호기심에 그 그림자를 붙잡으려고 가니 그림자는 도망갑니다. 빨리 달려 잡으려고 하니 빨리 도망갑니다. 두어시간 그러다가 마침내 소년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뒤로 돌아 집으로 돌아갑니다. 태양을 바라보고 걸어갑니다. 태양은 점점 서산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좀전까지 자기를 멀리 도망간 그림자가 궁금해 졌습니다. 놀랍게도 그 그림자는 이 소년을 좇아왔던 것입니다. 우리도 의의 태양 되시는 예수님을 향해 방향 전환을 하게 되면 행복은 우리를 좇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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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고대부터 많은 철학자와 종교인들이 행복의 원인과 행복감을 찾는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쾌락주의 전통은 개인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유쾌한 상태라는 관점에 초점을 두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만족스럽게 느끼는 주관적 상태가 행복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자기 실현적 전통은 개인의 잠재적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성격적 관점과 덕목을 충분히 계발하여 발휘하고 인생의 중요한 영역에서 의미있는 삶을 구현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봅니다, 행복에 대한 초기 연구들은 성별, 소득, 학력 등의 인구통계학적 변인들과 행복을 관련시켜 연구하였습니다. 긍정심리학은 기존의 심리학적 접근 방법과 달리 스트레스, 불안감, 우울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희망, 용기, 지혜, 인내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에 초점을 둔 새로운 심리학의 개념입니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완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느끼는 감사와 긍정적 정서 및 감사 성향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감사의 빈도가 많을수록 주관적, 심리적, 사회적 안녕감이 더 높음으로 나타납니다. 기독교인들의 내부통제 신념이 높을수록 초월적인 존재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뚜렷이 가지기 때문에 오는 평안이 있으며, 종교적 안녕감이 높을수록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미래지향적인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종교성이 높을 때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경향을 보이며 높은 수준의 영적 안녕감을 누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누리는 영적인 안녕 상태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게 만들고 절대자와 자신, 이웃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해 긍정적인 정서를 가져다 주어,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게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성경을 실천하며 살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의 안녕감과 달리 영적 안녕감을 추구합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최종 목표는 신앙 안에서의 안녕감(살롬)입니다.

 

이 안녕감은 절대자인 신과 교통함으로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또한 심리적 안녕감과 영적 안녕감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행복의 중심에는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하나님의 점진적인 구속사의 한 역사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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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천국시민임을 자각하고, 천국시민답게 살도록 행복라이프코칭을 해 주고 있습니다. 아가페의 원리 속에 자아 정체성을 수립하여,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천국의 삶을 산다면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복의 기초가 감사 기도라고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이 된 뉴욕빈민가 출신 콜린파월 장관의 이야기입니다.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는 공장에서 어느 날 그는 다른 인부들과 함께 도랑을 파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삽에 몸을 기댄 채 회사가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그 옆에서 한 사람은 묵묵히 열심히 도랑을 파고 있었습니다.

 

몇 해가 지난 후, 다시 그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때, 여전히 그 사람은 삽에 몸을 기댄 채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또 여러 해가 흘러 그곳에 다시 갔을 때 삽에 기댄 채 불평만 하던 그 사람은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장애인이 되어 회사에서 쭟겨났지만, 열심히 일하던 그 사람은 그 회사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일화는 파월의 인생에 큰 교훈이 되었다고 합니다.

 

불평을 일삼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 그 불평의 열매를 따먹게 마련입니다. 반면 감사는 그에 상응하는 열매를 가져올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행복을 증가시켜줍니다. 행복은 결국 감사에 비례합니다. 서양 속담중에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조심하라. 불평의 문으로 행복이 새나간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기억합시다. 감사의 문으로 행복이 들어옵니다. 감사는 희망의 언어입니다. 감사는 역경을 벗어나는 인생의 출구입니다.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Pearl Sydenstricker Buck, 1892626197336))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이다. 아버지가 먼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 중국동내 마을에는 백인이었던 펄 벅의 어머니가 신을 분노하게 만들어 가뭄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변했고, 어느 날 밤 사람들은 몽둥이, 곡괭이, 도끼, 쇠스랑 등 무기가 될 만한 농기구를 가지고 펄 벅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르게 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게 했습니다. 그리고 대문과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두고는 마치 오늘을 준비한 것처럼 어린 펄 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었습니다. 잠시 뒤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단숨에 거실로 몰려왔습니다. 굳게 잠겨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문이 열려 있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때 펄 벅의 어머니는 "정말 잘 오셨어요. 어서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 하며 정중히 차를 권했습니다. 그들은 멈칫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구석에서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답니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 밤의 두려움을 들려주며 만약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다면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간증했습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펄 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니엘 3장에 보니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에서 건져주실 주님을 바랐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고백으로 승리했습니다. 바른 신앙이란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 속에서 당장 건져주시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고백하는 믿음일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절망의 십자가를 피한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 뒤에 있을 영광을 바라고 잠잠히 참으심을 기억하고 주님의 참된 용기를 본받는 자...

그가 바로 절망에서 용기를 얻는 참 믿음의 사람일 것입니다. 바른 신앙생활이란 기쁜 일을 만나거나 어렵고 슬픈 일을 만나거나 그 속에서 매일 매 순간을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 믿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적 활동과 관련해서 성경은 성령님의 신적 활동을 상징을 가지고 표현합니다. 성령의 상징은 성령님의 역사속에서의 성령의 사역, 특징, 성격, 하나님의 현존양태를 반영합니다. 성령님의 상징은 인격적인 표현, 사건적인 표현으로 상징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물(7:37)로 표현됩니다. 성령님은 영적 생활을 하는데 필수적 요소이며,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기능과 관련해 물은 인간을 정결케 해주고, 인간을 심판해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의 구체적 상징은 불입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불이 소멸하는 의미를 가지듯이 인간의 죄악을 소멸, 정결케 하는 소명을 의미하고, 하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다음의 구체적 상징은 바람입니다. 성령의 편만성, 보편성, 자율성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절대적 주권을 의미합니다.


네 번째의 구체적 상징은 기름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인간을 선별했다는 것입니다. 기름 같은 성령님은 인간을 구별하고 선별하고,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힘으로서의 성령님의 역사도 의미합니다.


다섯 번째는 비둘기입니다. 순결, 평화, 온유 등을 의미합니다. 20, 2장에서는 술로 상징하는데,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담대함과 용기를 의미합니다또한 성령님을 인치심이라는 상징으로도 표현합니다. 성령이 요한복음에서는 중생의 도구로 이해되는데, 이 중생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에게 주시는 구원의 확신과 보장에 대한 성령님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증(고전1:21-22)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종말론적 성취를 확증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이미아직사이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이 땅에서 종말론적으로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체험은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미리 이 땅에서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담보라는 말과도 같은 말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종말론적 공동체가 나옵니다. 그들이 매일 한자리에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쁨은 담보와 보증으로서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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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며 사역하시기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주 안에 있는 우리는 행복할 뿐입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쁨, 기도, 감사로 성령 충만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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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Samuel Yun 尹三悅)

연세대 신과대 졸 (신학사),연세대 대학원 신학과 졸 (신학석사, 구약학 전공)

총신 (예장 합동) M.Div (Equiv)]

University of Dubuque Thological Seminary (M.A.R. 종교학)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in Chicago (M. Div.)

Harvard University Divinity School (Th.M. 고대근동학전공)

Boston University, School of Theology (Th.D. 과정이수, 구약학)

Cohen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 (Th.D., 구약학)

Latin University (Ph.D. in Religion 종교학)

Faith Theological Seminary & Christian College (Ph.D. in Theology 구약학박사)

Universidad Cristiana del Bolivia (UCEBOL)

Honorary Doctor of Education (명예교육학 박사)

현 감람산장로교회(담임목사),감람원 세계선교회 및 성경연구소 대표

NYSKC (예배회복운동) 학회 (Learned Society)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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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미션뉴스 김한나 기자 churchus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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