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무엘 목사 한반도에 주님의 평화를 회복하소서!

by kim posted Jun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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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한반도에 주님의 평화를 회복하소서!

2:11-18, 21:13-25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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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한반도를 덮게 하자!

 

지난 한 달 동안 우리는 보훈의 달(원호의 달)을 맞이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한반도에 다시는 동족상잔의 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195372731개월 동안 치루어졌던 한국전쟁(The Korean War)이 종전이 아닌 휴전이어서 사실 지금도 전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이 발발된지 66년을 맞이하여 더욱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로 채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평화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남과 북의 막힌 담을 허시고 한 민족으로 회복시키십니다.

 

2:11-18을 묵상합시다.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원수를 소멸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형제와 형제를 화목하게 하십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려운 고비와 역경을 당할 때마다 기도드린 내용대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18:1-2)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피난처와 환난을 만날 때 큰 도움이 되십니다.

 

제가 영락교회를 섬길 때 가장 좋아했던 성경구절 중 하나가 시편 46:1-3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셀라)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보다 더 강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한반도를 지켜 주시도록 기도하며 통일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민족이 되도록 기도드립니다.

 

미국도 흑노 해방 문제로 남군과 북군이 서로 싸운 적이 있습니다(The Civil War). 18614,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주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형성하며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한 뒤, 아메리카 남부 연합군(이하 '남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1865년까지 4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전쟁 결과 남군이 패했고,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103만 명의 사상자(당시 인구의 3%)가 발생했고, 사상자 중 62만 명은 군인이었으며 그 가운데 2/3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었습니다. 56,000명의 군인이 남북 전쟁 중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남북 전쟁은 미국이 지금껏 참여한 모든 전쟁에서의 사망자 수와 맞먹는 수많은 미국인들의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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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의 마지막 부분인 삿 19-20장에 보면 이스라엘도 내전을 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습니다. 경건했어야 하는 이 레위인은 육신의 감정에 있어서 연약했고 절제심이 적었고 한 아내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의 첩은 음행하였고 그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의 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이나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아내에게 다정히 말하고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하인 하나와 나귀 두 필을 데리고 장인댁으로 가니 그 첩의 장인은 그를 나흘 동안 머물었고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였고, 다섯째 날에 그 레위인은 해가 기울어가는 때에 일어나 떠났고, 해가 지려 하는 때에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에 도착하자 해가 졌습니다. 한 노인의 호의로 그 집에 유하던 밤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손님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동성애적 음란 행위를 원했던 것입니다(참고, 19:5).

 

집 주인인 그 노인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기를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여기서 망령된 일이라는 원어(니발라)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악행이라는 뜻입니다. 무리가 노인의 말을 듣지 않자, 그 레위인은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었고 그들은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며 새벽 미명에 그를 놓아 보내었습니다. 집단 강간을 한 것입니다. 동틀 때에 그 여인은 그 주인의 우거한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누웠고 마침내 죽었습니다.(19)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가서 자기 동네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그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은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습니다.

 

막내 지파 베냐민을 향해 보병 40만명이 모여 들어 전쟁이 선포되었고, 이에 베냐민 자손의 용사의 수는 26,0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700명인데 그들은 다 왼손잡이였고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전사들이었습니다. (20:1-23). 처음 이틀간 이스라엘 군대가 패배하여 4만명 전사자들이 나왔습니다. 백성들은 언약궤가 있었던 벧엘로 올라가 회개 기도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응답을 받고 나가 승전했습니다.(20:24-32)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10,000명이 기브아에 이르러 쳤고 싸움이 심히 맹렬하였으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셨으므로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사람 25,100명을 죽였습니다. 도망한 6백명 외에는, 한 지파가 거의 다 멸절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내전의 비극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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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내전은 실로 세계 전쟁의 연장이었습니다. 세계2차 대전이 끝난지 5년만에 일어난 6.25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 사이의 전쟁이 아닌 세계 전쟁이었습니다. UN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을 도와 16개국이 참전했고 5개국이 의료지원을 했습니다. 미국, 캐나다, 콜럼비아,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남아공화국, 에티오피아, 영국,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베르그, 네덜란드, 터키. 1953년까지 한국전에 참여한 연합군은 총 341천여 명(미국을 제외한 연합군 수는 39천여명)입니다.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5개국은 병원 혹은 병원선 등 의료지원을, 그리고 40개 회원국과 1개 비회원국(이탈리아)9개 유엔전문기구가 식량제공 및 민간구호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를 거의 방문해서 선교에 동참하며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북한군을 도와 중공군과 소련군이 참전했으니 22개국 대 3개국의 엄청난 전쟁을 한반도에서 치룬 것입니다.

 

6.25 한국전쟁은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첫 번째 사건이 제주 4.3사건입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국군 14연대는 제주4.3사건 진압 출동을 위해 대기 중 부대내 공산세포들이 이를 방해하기 위해 소위 반란을 일으켜 여수 순천일대를 장악하여 수많은 양민과 군인 그리고 경찰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두 번째 북한에서는 소련이 세운 김일성 정권이 마침내 적화통일을 위한 남침을 계획하면서 위장전술로 남북지도자 교환을 요청해 왔습니다. 위장술에 능한 공산주의자들의 기미를 알아챈 대한민국 국방부는 19504.21에 경계 강화를 그리고 6.11엔 평화공세에 대한 비상경계 태세를 전군에 시달했습니다. 그러나 1개월이 지난 경계령이 너무 오래되었고 농번기도 되었으므로 국방부는 623일을 기해 비상경계 태세를 해제하고 24일 토요일 오전 일과를 마친 후 전 부대에 외출, 외박을 허가하였습니다.


바로 이 틈을 이용하여 북한군은 625일 주일 새벽 4전선에 걸쳐 남반부 국방군의 북침을 격퇴하고 남반부를 해방시키자는 기치를 들고 남침을 개시하였습니다. 서울은 그들의 계획대로 사흘만에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1945815일 우리가 광복을 맞자 38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고, 공산 정권을 세워 민족 통일을 방해하면서 침략의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들은 면밀하게 침략을 계획해 놓고, 67일에 방송을 통해 광복 5주년 기념일에 남북 통일 최고 입법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통일 회담을 열자고 해 놓고는 자기들 계획대로 남침을 진행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통일을 말하면서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제 와서 보면, 공산당의 저의는 결국 1950625일 새벽 430(주일) 일제히 38선을 넘어 공격을 개시함으로 무력 통일하려고 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한편으로는 평화적으로 회담을 하자고 하면서 본의는 무력 통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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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으로 미국시간 625일에 UN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되어(소련대표 불참) 몇 시간 토의 끝에 북한의 남침을 평화의 파괴행위로 규정하고, 북한군의 적대행위 중지와 군사력의 38선 이북 철회 요구안을 9:0으로 가결했습니다. 유엔군 참전이 결정되어 한국전에 맥아더 원수와 훗날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 장군을 비롯한 UN(미군) 154(14), 국군 621, 경찰 17천 도합 7913,738명의 인명 피해를 보았고, 학도의용군 7,000명이 희생되었다. 북한군은 157만 이상이 살상되었습니다. 남한의 민간인 99만명, 북한 200만명이 전쟁 속에 희생되었고, 이산가족 1천 만 명이 발생했습니다.(이종윤목사, “교회분열과 6.25 한국전쟁글 인용)

 

한국전 3일 만에 수도를 서울에서 대전으로 정부는 옮겨야 했고, 미국은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를 열어 한국 문제를 건의하여 영국, 프랑스, 콜롬비아, 터키 등 16개국의 회원국이 국제 연합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수도는 대전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부산으로 임시정부를 옮겨야 했습니다.


이제 남한의 전 국토는 대구와 부산만 남겨 놓은 채, 적화 통일은 시간문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런 때, 맥아더 국제 연합군 총사령관은 인천에 상륙하여 낙동강 전선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삼고 반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낙동강은 치열한 전투장으로 변했습니다. 지금도 대구 주변 낙동강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인민군은 여기서부터 후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수도 서울이 함락 된지 3개월 만에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UN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915)에 성공함으로써 서울을 빼앗긴 지 3개월 만인 928일에 서울을 수복했습니다. 저의 부친께서는 이 기간 피난가지 않으시고 남산에 있는 총회신학교 다니시면서 서울 신당동 중앙교회 강단을 지키시다가 공산당에게 순교 당하기 직전 맥아더가 인천 상륙시 하나님의 은혜로 옥수동 뒷산에서 공산당원들이 혼비백산하던 틈을 타서 도망하여 순교를 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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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모든 전선에서 유엔군과 국군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북진을 거듭하여 이번에는 거꾸로 평양이 함락되고 두만강, 혜산진까지 진격하여 곧 통일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기치 않았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511.4 후퇴입니다. 국토 통일을 눈앞에 두었을 때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여 인해 전술로 반격해왔습니다. 지금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 중공군의 대부분이 오늘날 연변지방에 살고 있었던 조선족들이 많았답니다. 역시 동족사이의 전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때 전투야말로 얼마나 처절했는지 모릅니다. 양쪽에서 엄청난 사망자, 실종자,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결국 38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2년년 반을 끌어오다가 서로 지친 상태에서 좀 쉬었다 하자고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6.25를 분석한다면,

1) 1938년도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죄를 회개 하지 않을 때 심판의 몽둥이를 맞은 것입니다.


2) 해방후 5년간 한국교회는 일제 강점기때 하던 새벽기도를 중단했습니다. 기도를 쉬는 죄를 범했습니다. 6.25때 새벽기도회가 다시 부활되었습니다.


3) 6.25 이전 북한에는 2800교회가 있었으나, 남한 500개 미만의 교회였는데 전쟁으로 북한의 성도들이 대거 남하하여 남한에 교회수가 급증했습니다.


4) 해방후 한국교회는 분열을 하고 있었고 6.25 이후에도 계속 분열했습니다. 1950421일 신사참배 반대로 옥에 갇혔던 소위 교회재건을 밀고 나가던 고신파와 성경의 역사 비평주의 신학을 주장한 조선신학 교파의 충돌로 경찰의 간섭을 받으며 총회가 난동 속에 유회되었습니다. 두달 후 6.25전쟁이 터져 민족의 아비규환에 쫓겨서 부산까지 내려가 현해탄의 물고기 밥 신세로 전락한 상황에서 195152436회 총회가 속개되어 고려신학교파를 정식 정죄하고, 이들이 모여 19517월 신사참배 반대 명분을 세워 장로교 총회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19524월 총회에서 고별선언을 하고 퇴장하여 1956년 고려파 총회를 구성했습니다. 3년간 전쟁이 휴전으로 들어 갈 무렵 조선신학교가 분열이 아닌 갱신을 선언하면서 1954610일 기독교장로회를 출범시켰고, 그 무렵 감리교회도 호헌파와 총리원측으로 분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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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11월 합동총회를 창립하고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용공적으로 규정하고 보수와 신앙의 순수성을 보전한다는 기치를 세우자 1960217일 장로교 통합 교단이 출발했습니다. 이 무렵 성결교회도 분열되었습니다. 그해 4.19학생의거가 교회 역사의 격동 속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현대사의 격동기마다 교회가 분열한 셈입니다. 6.25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분명히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첫째, 이 같은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5,000년 역사 중에 우리 민족끼리 그렇게 지독하게 싸운 것은 6.25뿐입니다. 외세에서 들어온 이데올로기(사상思想)가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온 가족을 몰살하였고, 한 동네가 모두 불태워졌습니다. 가장 잔인스러웠고, 가장 비인륜 적인 범죄의 행위였습니다. 3년 동안에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거리에는 부모 잃은 고아와 깡통 든 거지들, 집을 잃은 피난민들이 노숙자들이 되어 거리에 득실거렸습니다. 전쟁처럼 비참한 비극은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한반도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공산주의(共産主義)는 이 땅에서 절대로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6.25 전쟁이 사상의 대립이요 사상전이었다면, 공산주의의 원조(元祖)인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는 실패한 정치체제임을 입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실패한 공산주의 사상을 무엇 때문에 동경하고 있는지...?

 

학생 시절에는 한번쯤 공산주의 사상에 기울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젊은이들이라면 사회적 모순을 보면서 저항 의식으로 한번쯤 매력을 느낄 정도이지만, 그것도 전 세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과거의 제정 러시아는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황제로부터 고관 대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노동자 농민들을 대할 때 성경의 가르침대로 못했기 때문에 소련의 10월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 아닙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이 성경대로 살면 공산주의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나와 같이 사랑하고, 인류를 위해 봉사할 때, 민주주의는 자연이 실현되고 꽃피게 됩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공산주의는 악()의 영입니다. <정사><권세><어두움의 주관자>들입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하나님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칼 막스는 "()은 필요 때문에 고안된 정신적 허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는 공산당 선언문에서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다같이 단결하고 자본가의 재산을 빼앗아 공동소유로 만들자"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권을 부정하고, 무자비한 살생과 계급투쟁의 혁명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신앙인들이 바로 서지 못하면 하나님은 징계한다는 교훈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공동체입니다. 영적으로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이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싸우면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미 6.25때 입증되었습니다. 8.15 해방 후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서로 미워하고 질시하고 싸웠습니다. 싸움의 원인은 누가 더 하나님을 바로 믿었느냐? 하는 것으로 싸웠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신 신학으로 몰아 부쳤고, 이단이란 낙인을 찍어 총회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악의 영들을 대항하여 싸울 유일한 전초기지 이기도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 사상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적대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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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영적 싸움입니다. <악령><성령>의 싸움입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10-17)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나라들과 유대를 함께 하는 것은, 저들이 완전무결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들이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한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김이봉 목사, 상도교회, 6.25가 준 교훈, 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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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겸손한 마음으로 이 땅에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본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전쟁을 모르는 후세들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일깨워, 아직도 자기들 생각대로 따르지 않으면 불바다 만들겠다는 블레셋과 같은 무리들 앞에 벌벌 떨고만 있을 것이 아닙니다. 용감한 다윗과 같은 신앙의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6.25가 준 교훈을 되새겨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찬송 412(469)은 미국인 W.D. 코넬(Cornell)이 작사하였는데, 1889년 가을 수양회에 참석했던 코넬은 집회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은혜를 깊이 묵상하던 중에 자신의 마음을 감싸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평화를 느꼈습니다. 이 마음의 평화를 종이에 적었지만 이 메모지가 바닥에 떨어진 것도 모르고 그는 수양관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메모지를 작곡가 W.G. Cooper가 발견하고 평화, 평화, 놀라운 평화,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네,,, 내가 간구하오니 내 영혼을 그 사랑의 물결에 영원토록 덮으소서큰 감동을 받고 즉시 오르간으로 가서 아름다운 찬송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저는 성지 순례하면서 갈릴리 팔복교회에서 이 찬송을 지휘할 때 하늘의 평화가 촉촉이 우리 심령을 사로 잡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 찬송이 한반도를 덮기를 바라며, 남미 선교지에 덮혀지기를 바라며, 우리 섬기는 교회마다 평화의 물결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후렴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2.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 자 그 아무도 없으리라

3.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남은 주의 큰 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 내 영혼이 편히 쉬네

4.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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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Samuel Yun 尹三悅)

연세대 신과대 졸 (신학사),연세대 대학원 신학과 졸 (신학석사, 구약학 전공)

총신 (예장 합동) M.Div (Equiv)]

University of Dubuque Thological Seminary (M.A.R. 종교학)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in Chicago (M. Div.)

Harvard University Divinity School (Th.M. 고대근동학전공)

Boston University, School of Theology (Th.D. 과정이수, 구약학)

Cohen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 (Th.D., 구약학)

Latin University (Ph.D. in Religion 종교학)

Faith Theological Seminary & Christian College (Ph.D. in Theology 구약학박사)

Universidad Cristiana del Bolivia (UCEBOL)

Honorary Doctor of Education (명예교육학 박사)

현 감람산장로교회(담임목사),감람원 세계선교회 및 성경연구소 대표

NYSKC (예배회복운동) 학회 (Learned Society)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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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미션뉴스 김한나 기자 churchus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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