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by wgma posted Jun 28, 2016 Views 35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마 16:5-12

13557775_148708398882492_6711042529334532446_n.jpg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쌔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7.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 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당시 바리새인들은 보수주의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보수 신앙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을 바로 알지  못했고 자기 의(義)를 의지하고 자랑했다. 그들은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종교적 지식도 많고 상당한 열심도  있었으나 종교의 외적 규례들을 중시하고 더 중요한 내면성을 무시했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외적 형식보다  마음이다. 마음의 할례는 경건의 시작이다. 그러나 그들은 형식주의에 떨어져 있었다.

다른 한편, 사두개인들은 그 당시의 자유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모세오경을 존중했으나 다른 성경들은 무시했다. 그들은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천사도 영도 몸의 부활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자들이었고, 또 세상의 권력과 금력과 결탁한 세속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현실에 잘 적응하였고 잘 타협하였다. 당시의  부유한 고위 제사장들은 이 파에 속하였다.
누룩(Yeast)이란 포도액으로 반죽된 순수한 밀기울 또는 물로 반죽하여 발효할 때까지 놓아 둔 보리로 만들어진 것으로, 빵이나 술을 만들 때 발효제로 사용된다. 구약에서는 빵을 만드는 재료로서뿐만 아니라 의식과 관련하여, 신약에서는 종교적인  가르침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다.

구약에서 사용된 누룩에 대해서, 율법은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 동안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도록 했는데(출 23:15;마 26:17),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 빵이 발효되기를 기다릴 시간도 없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고 서둘러서 떠났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었다(출 12:34; 신 16:3).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에는 꿀과 함께 누룩이 드려지는 것이 금지되었고(레 2:11), 오직 누룩 없이 빚어진 떡만이 허용되었다(레 10:12)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는데, 화목제의 감사 희생과 함께 그 예물에 드려지는 경우(레 7:13)와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으로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경우(레 23:17), 그리고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는  경우(암 4:5)는 누룩이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사용된 누룩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헤롯당파를 경계하는 비유에서 사용되었다(마 16:6; 막 8:15).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외양에만 관심을 두는 것(마 23:13-36; 눅 12:1), 사두개인들의 의심과 고의적인  무지(마 22:23, 29), 헤롯의 사악함과 정치적인 궤휼(마 22:16-21; 막 3:6)을 누룩에 빗대어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5:6-8에서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을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과 대비하면서 유월절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여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음을 상기시켰다. 또한 갈라디아서 5:9에서는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들어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주의시켰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사용된 누룩에 대해서 예수님은 천국을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이라고  비유로 설명하셨다(마 13:33; 눅 13:21). 이것은 천국의 일이 은밀히 진행됨을 말하며, 강력한 행동과 함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마 12:19)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나약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천국의 외형은 감추어져 있고 은밀하나 모든  것에 침투하여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교훈(teaching)이란 가르치고 이끌며 깨우치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교훈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생각하였다(잠 1:30;  2:6; 신 32:2).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은 교훈을 의미했다(신 4:14; 롬 2:18).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막 1:22; 요 7:16)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마 15:9; 16:12)이나 마귀의 가르침(딤전1:3)을 지칭할 때도 있다.

성경은 성도의 교훈을 위해 기록되었다(롬 15:4; 딤후 3:16).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의 바른 교훈(딛 2:1)을 따라  말하며, 교훈에 따라 양육 받아야 하고(딤전 4:6), 아울러 세상의 잘못된 교훈의 풍조에 요동치 말아야 하며(엡 4:14;히 13:9 참고), 그리스도의 교훈(요이 1:9) 안에 거해야 한다.

  제자들은 마가단 지역에서 바쁘게 떠나오면서 먹다가 남은 부스러기를 챙겨오지 못한 것 같다. 예수님께서 바라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 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이때 도시락 생각이 나서 자기들끼리 의논을 한 것이다.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책망을 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곧 교훈을 주의하라.” 교훈은 누룩같이 퍼져나가는 힘이 있다. 좋은 교훈은 좋은 영향을  끼치지만, 잘못된 교훈, 이단, 율법주의, 형식주의의 교훈, 혹은 자유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의 교훈은 참된 경건을 해치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못된 교훈을 분별하여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본다.
디모데후서 2:17에는 잘못된 교훈을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에 비교하였다. 그것은 조기 발견, 조기 치료치 않으면 온 몸을  망치게 될 것이다. 자신만 망치지 않고 온 교회를 망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교훈을 분별하여 붙들어야 하고  잘못된 교훈을 분별하고 경계해야 한다. 여기에 성경 읽기와 성경 연구의 중요성이 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예수를 믿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정도의 신앙을 가졌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 없어서  염려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 남은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4천명을 먹이고 남은 부스러기가 몇 광주리였는지 기억하지 못하느냐? 제자들은 예수님이 특별한 경우에만 떡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기적을 행하신 분이므로 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라고 생각이 들게 된다.

제자들의 삶이란 전적으로 예수님께 맡기는 삶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제자들의 모습에서 보여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것과 자기들이 먹을 양식이든, 모든 것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뜻을 따라 그분만 따라 다니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라도 더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먹을 떡 보다도 더 관심이 있어야 할   일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교훈)에 관한 일이어야 한다. 예수를 믿고 제자 된 사람들의 삶은 세상에 관심을 갖고, 썩을 양식이나 염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의식주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예수의
사람들은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분명히 다른 사람을 사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의 누룩(교훈)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구약의 율법이 조금이라도 신약운동에 침투가 되면  신약운동 자체가 부패해져서 결국 하나님의 계획은 큰 상처를 입게 되고 만다. 말을 바꾸어서 표현하면 ‘하나님의 거룩 함’이  훼손을 입게 된다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복음이 보존되어야 하지만 율법으로 복음이란 옷 위에 덧옷을 입고 교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부패해 질 수밖에 없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