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 읽기 26-27

by wgma posted Jan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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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 읽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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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의 용서 2

 

[기독교]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천주교]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을 믿나이다. 

[영 어]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라틴어]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et vitam aeternam.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직접 자백하면 사함을 받는다. 어떤 중재자도 요구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우리들의 죄사함을 위하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다. 사제(신부)에게 나아가 죄를 고하고 죄의 사함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요한복음 20:21-23]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들에게 죄 사함의 권한이 주어졌다고 주장되는 성구가 요한복음 20:23이다. 그래서 이 구절은 바로 이해되어야 한다. 23절을 중심으로 문맥을 살펴보자.

    

 

죄 사함의 선포 - 복음의 핵심이다

 

교회에 성령이 임했다. 사도행전의 복음선포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지 그리고 예수님은 왜 부활하셨는지 제자들은 알게 되었다. 그들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가 사하여졌음을 복음으로 선포하기 시작했다


죄가 사라졌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구원이 주어졌음을 세상에 전하기 시작했다. 베드로는 요엘서 2장에서 말씀한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은 누구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음을 설교한다.(사도행전 2:16-21) 더 이상 어느 특정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구원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구원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2:21)고 선포된다. 요한복음 20:23의 내용은 바로 구원의 선포를 말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이미 인류의 죄가 사해졌음을 선언하는 사건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복음인 이유는 이미 죄가 용서받았음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치유하셨을 때 때로는 구원받았음을 선포하기도 하고 때론 죄가 사해졌다고 선포하기도 한다. 구원받았다와 죄 사함을 받았다를 같은 선언으로 보셨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구원은 죄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이제부터 너희는 예수 내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죄로부터 해방되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열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너희는 그들에게 구원받았음을 선언할 수 있다.’ 이렇게 구원에의 선포를 요한복음 20: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다.’고 한 것이다. 정말이지 쉽게 이야기 하자.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러한 구원에의 선포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사도들에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다. 요한복음 20:23은 사도들에게 특별히 주어진 죄를 사해주는 권한을 가졌다는 내용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라

 

23절이 어떻게 구원을 선포하는 내용인 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전후 문맥을 보자. 21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신다. 어디로? 세상으로. 무엇을 하라고? 복음을 전하라고.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다


성령이 없이는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거니와 당연히 전도할 수도 없다. 23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이 서로 대칭적으로 연결이 된다. 세상에 선포해야할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21절에 대한 답으로서의 구절은 31절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생명이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죄가 없는 자어야 한다. 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들의 죄를 없애 주셨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을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니 구원에의 선포는 죄사함의 선포와 같은 의미가 된다. 그럼 누가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성령을 받으라는 22절에 대한 대칭 성구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도마에게 주어진 예수님의 말씀이다.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사도행전은 교회가 성령의 임함으로 시작되어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행전이요 전도행전이다. 복음선포의 사명을 가진 교회행전은 성령이 아니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성령행전이기도 하다. 사도행전 1:8을 보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어느 누구도 죄를 사해줄 권한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신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없이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우리의 죄가 이미 용서되었음을 선언하셨다. 바로 이것을 우리는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이 요한복음 20:23의 바른 해석이 된다.

 

야고보서 5:14-16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이 구절들은 천주교의 병자성사(전에는 종부성사라 하였다)에 대한 합당한 구절로 말해진다. 16절에 죄를 서로 고백하며라는 말은 천주교의 고해성사를 정당화하는 구절로도 말해지는데, 여기에서 (sins)’가 아니라 허물(faults)’로 번역되는 것이 맞다. 에베소서 2:1에는 허물과 죄가 동시에 나온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미 우리는 허물과 죄로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이었으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었다. 그것도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에베소서 2:5) 야고보서 5:14-16은 지면 관계로 자세하게 풀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한일서 1:9에 따라 우리의 허물이나 죄가 발견되면 미쁘신 하나님께 자백할 것이다. 야고보서 5:16에 보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의인이란 사제(신부)나 어떤 특정한 자를 말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를 말한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당신이 의인이다. 믿는 자의 제일 큰 특권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다. 예수님을 믿는 당신은 이미 죄사함을 받은 의인이다.

 

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 읽기 27

 

몸의 부활

 

[기독교]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천주교]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을 믿나이다. 

[영 어]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라틴어]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et vitam aeternam.

 

한글번역이나 영어번역은 몸(body)의 부활이다. 그런데 천주교 번역은 육신의 부활이다. 라틴어 원문에 보면 천주교 번역이 맞다. 라틴어 ‘carnis(카르니스)’육체의(fleshly)’라는 뜻이다. 헬라어로는 사르키코스인데 명사로는 사르크스(flesh)’으로 번역된다. 요한복음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했을 때 육신에 해당하는 단어다. 사도 요한이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는 다를 바 없는, 육체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연약함과 열정을 지닌)인간으로 태어났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히브리서 4:15에서 예수님은 실제로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라고 우리 인간과 다름없는 육신의 몸을 가졌다고 말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는 없으시니라.”고 이어서 말씀한다. 사도신경은 육이 없는 몸이 아니라 육을 가진 몸의 부활을 정확하게 강조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육을 가진 몸의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썩지 않을 몸의 부활

 

[고린도전서 15:52-54]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고린도전서 15장은 몸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소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을 때 시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소마.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으로 생각했다. 이때 예수님은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39)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소마는 육을 가진 몸을 말한다. 곧 육신의 부활이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한 이유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은 그들은 어찌 될 것인가? 사도 바울은 여기에 답하고 있다.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 것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나면 육신을 가진 그들의 몸 곧 죽은 몸(시체)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선포한다.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다시 산 육신은 이전의 육신과 다르게 변화한다. 인간이 타락한 후 인간의 육신은 병이 들고 노화되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살게 된 부활한 육신은 다시는 병들지 않고 늙지 않는 그래서 죽음이 다시는 없는 썩지 않는 몸으로 변화할 것이다.

 

신령한 몸의 부활

 

[고린도전서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죽음의 문제는 다음 호에 다루게 될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죽음이란 소멸이 아니라 분리 또는 단절을 의미한다. 육신의 죽음이란 영과 육이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몸에서 영이 떠나면 육신은 시체가 된다.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런데 영으로만 존재하는 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전한 몸이 아니다. 육과 몸이 결합된 몸이 온전한 몸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온전한 몸을 가진 인간에게 예배받기를 원하신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여기에 번역된 역시 헬라어로 소마. 육과 영이 온전히 결합된 몸이다. 인간의 구성 요소가 육과 영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분설이 맞는가, 육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졌다는 삼분설이 맞는가 하는 논란은 집어치우자. 이분설이 되었든지 삼분설이 되었든지 더 나아가 사분설 오분설 백분설이 되었든지 상관없다. 믿고 싶은대로 믿게 놓아두라. 중요한 것은 어떤 설을 믿든지 그 모든 것이 결합된 온전한 몸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이것이 영적 예배다.


영은 거룩하고 육은 거룩하지 않다는 이원론은 잘못된 것이다. 영적인 것은 거룩하고 물질은 더럽다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은 곤란하다. ‘소마라는 단어는 소조라는 단어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소조란 헬라어 단어의 듯이 구원하다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은 영과 육이 결합된 온전한 몸의 구원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소조)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된다.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영만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육도 거룩하게 된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이란 말이 가지는 본질은 보이지 않음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말은 보지 않는 곳(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육이란 보이는 부분이라면 영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 마음, 목숨 그리고 뜻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따라간다.


당연히 육신이 죽음에서 부활할 때 영은 다시 결합한다. 그렇게 육과 영이 다시 결합된 몸은 썩어질 몸이 아니라 다시는 썩지 아니할 몸으로 영원히 사는 몸으로 변화할 것이다. 아울러 그 썩지 않을 몸은 신령한 몸이 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영과 육이 따로 노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41)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채로 예수님을 맞이하든지 죽은 자가 육신의 부활을 이루어 다시 영과 결합하여 살아있는 몸이 되든지 이때는 영과 육이 하나가 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령한 몸이 된다. 육의 몸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영의 몸이 된다. 육과 영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게 된다.

 

몸의 부활의 근거

 

육과 영이 다시 결합한 온전한 몸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거짓이 되고 만다.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된다. 우리가 몸의 부활을 가지게 될 근거로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의 부활을 든다. 예수님의 부활은 앞으로 부활하게 될 우리들의 몸의 부의 부활은 실제적인 근거로 제시된다. 예수님은 단순히 영으로만 부활한 것이 아니라 육을 가진 몸을 부활하셨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20) 예수님의 제자였던 도마는 육신의 몸을 가지신 채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요한복음 20:28)이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한복음 20:27) 더 나아가 너는 나를 보고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요한복음 20:29) 아직 예수님의 재림이 오지 않았으니 이는 천국과 지옥이 참으로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같이 믿음을 요구한다. 성경 말씀에 기록된대로 믿을 것인가 아닌가는 우리의 몫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우리의 몸이 다시 산다는 사실을.


김성철 목사(예승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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