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3)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교훈-이응주 목사

by wgma posted Mar 17, 2017 Views 118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태복음 21장(3)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교훈

 



                                                         3.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마태 21;18-22)

                                                                  KakaoTalk_20170119_221630423.jpg

 
이른 아침인데 왜 시장하셨을까? 지난밤에 어느 집에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고 추측해 본다. 감람산에서 지내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침을 못 잡수지고 나오신듯 싶다. 그런데 때마침 좀 떨어진 곳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어 혹 열매라도 얻을까 해서 가 보았지만 잎만 무성할 뿐 열매는 없었다. 성경사전에 무화과에 대한 내용을 설명한 것을 참고적으로 옮겨 본다.  
무화과(Fig)는 뽕나무 과의 낙엽 관목인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대부분의 지중해 국가에 자생하는 나무로 팔레스타인에는 일찍부터 이식되어 널리 재배되었다. 많이 자라면 12m까지 자라며 경관도 좋다(민 13:23; 마 7:16). 넓적한 잎들은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나무의 좋은 그늘 아래를 명상의 장소로 삼았다(요 1:48). 무화과나무 아래 산다는 것은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었고(왕상 4:25; 미 4:4; 슥 3:10) 마른 무화과는 재난과 심판을 상징하였다(렘 5:17; 호 2:12; 욜 1:7; 암 4:9).

꽃은 암수가 있고 흔히 열매로 불리는 꽃 턱이 변화한 것 속에 작은 꽃이 있어 외부에서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꽃이 피지 않는 것처럼 보여 무화과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열매는 엔게디 같은 아열대 기후에는 4계절 내내 열매를 얻을 수 있지만 대개는 1년에 두 번 열매를 거둔다. 3월에 열리는 처음 열매는 지난해의 가지에서 열리는 것으로 아직 즙이 나오지 않아 먹기에 부적당하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는 먹을 과일이 부족하여 종종 먹기도 하였다. 이 열매에 잇달아 나오는 잎은 여름이 가까웠음을 알게 해준다(마 24:32). 이때 맺은 열매들은 4월과 5월에 익어서 떨어지고 6주 정도가 지나면 열매가 새로 나온 가지에서 열리는데 이것이 무화과이며 가을이 되어 수확하게 되는 것이다(민 13:23).

무화과는 날로 먹거나 말려서도 먹으며(삼상 25:18) 빵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삼상 30:12; 대상 12:40). 또 열매는 의학적인 효력이 있어서 약용으로도 쓰였다(왕하 20:7; 사 38:21).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때는 유대력으로 니산월(태양력으로 3-4월), 유월절 기간이다. 3월 초순이 되면 무화과나무에는 작은 잎이 나오는데 이때에 아주 작은 열매들이 열린다. 이 열매를 ‘타크시’(아랍어)라고 부른다. 이 열매는 3월 하순 종려주일을 기념할 때쯤 되면 엄지손가락만큼 커진다. 그리고 잎사귀들은 연초록으로 부드럽게 퍼지지만 크기는 젖먹이의 손바닥만 한 정도이다. 한 주일이 더 지나서 4월초 부활절이 되면 타크시와 잎사귀들이 조금더 자라지만 무화과나무는 여전히 벌거벗은 상태이다.
마가복음 11:12-14, 20-26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이런 상태의 나무였을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나무에서 시장기를 면하시려고 무화과를 찾으셨던 것이었다. 그런데 타크시는 진정한 의미에서는 무화과라고 볼 수 없다. 이것들은 4-5월경에는 떨어지며 6주 정도가 지나서 새로운 열매가 열리게 되는데 이것이 진짜 무화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3월 중 열리는 무화과는 진짜 무화과의 전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네들은 이 타크시를 먹어 시장기를 면하곤 하였다. 타크시의 맛은 단맛은 거의 없지만 역겹지 않고 향긋한 냄새가 있다. 예수님이 타크시를 찾으려고 무화과를 보았으나 열매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은 그 해 가을에도 진짜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과일나무는 쓸모없는 나무로 땅의 양분만 축내고 땅만 차지하는 무익한 나무인 것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을 단순히 열매를 얻을 수 없어 분을 내신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은 것처럼 예수님에 대한 참 신앙을 갖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또한 무화과나무는 열매만이 유용한 나무라는 사실을 알 때 예수님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열매있는 모습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받을 수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말세에 무슨 징조가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마 24:3; 막 13:4)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시며 마지막으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다(마 24:32; 막 13:28; 눅 21:29).

팔레스타인 지역의 나무들은 대부분 상록수이지만 무화과나무는 낙엽수에 속한다. 무화과나무는 봄이 되면 잎을 내고 여름이 되면 잎이 무성해지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이러한 무화과나무를 통해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잎이 무성해지면 여름이 되는 것이 사실이듯이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마 24:34-35; 막 13:31; 눅 21:33).
또한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분명한 교훈의 말씀이기도 하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무화과나무가 무성해지듯 이스라엘 국가의 재탄생과 회복은 예수님 재림이 임박함을 보여 준다(마 24:33; 막 13:29; 눅 21:31).

이스라엘 민족은 오랜 동안 나라 없이 살아왔다. 그러다가 1948년 5월 14일에 나라를 재건하게 되었다. AD 70년에 나라가 로마에 의해 멸망되고 나서 1878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다. 또한 무화과나무 비유는 시대적인 현상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 왔음을 알고 깨어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라(마 24:42-51; 막 13:33-37; 눅 21:36)는 교훈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히스기야를 살린 ‘한 뭉치 무화과’에 대한 교훈은 무엇인가? 히스기야가 왕이 된 지 14년 후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사 38:1). 그의 병은 심한 뾰루지나 종기 혹은 암이었던 것 같다. 그의 죽음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분명히 알려졌고 그는 유언만 남기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벽에 얼굴을 대고 가식 없는 기도를 함으로 15년을 더 사는 행운을 얻었다(사 38:1-8). 그런데 이때 기도한 즉시 병이 나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의 환부에 무화과 한 뭉치를 붙이라고 하셨다(사 38:21).

그 당시 흔히 구할 수 있었던 무화과로 어떻게 병을 고칠 수 있었을까? 누구라도 종기에 그것을 붙이면 나을 수 있었을까? 그 당시 근동 지역에서는 종기에 대한 민간요법으로 무화과를 사용하곤 했었다. 그렇지만 히스기야의 병이 나은 것은 무화과 자체에 어떤 특별한 효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무화과를 종처에 붙이게 하심으로 그의 불치병을 치료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보여 주시는 도구로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용하시는 분이시다(요 9:1-12).
그런데 예수님은 때가 되지 않았는데 열매를 구하려다 없다고 해서 저주를 하셨을까? 무성한 잎을 보여준 무화과나무 이것은 외식으로 포장한 유대교 사람들을 상징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사건은 제자들에게도 큰 교훈이 되었을 것이요 지금도 우리에게 교훈의 메시지를 전한 일이 된 듯이 생각된다. 거창하고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당의 위상은 갖추고 있지만 예수께서 원하시는 열매 없는 교회들은 없을까? 이미 주님의 뜻을 벗어났다면 그것은 속빈 강정과 같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다.
417a179d156b30c3cdb2b253cd929cd7.jpg



Articles

1 2 3 4 5 6 7 8 9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