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들어갈 수 없는 아프간서 ‘전쟁 과부’ 돕는 서우석 대표

by wgma posted Mar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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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들어갈 수 없는 아프간서 ‘전쟁 과부’ 돕는 서우석 대표

입력 : 2017-03-18 00:01
미군으로 파병돼 아프간 아이들을 돕는 서우석 대표. 힘펀드코리아 제공

"목회를 한 사람도 아니고 선교를 하겠다고 작정한 사람도 아닌데 그냥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현지 전쟁터에서 부름을 받은 겁니다." 

NGO 힘펀드코리아(HEMEFund Korea) 서우석(49) 대표의 말이다. 서 대표는 '네가 이 사람들을 돌봐줄 수 있겠느냐'는 부르심에 "아멘!"이라고 한 것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회고했다. 그는 무능한 사람을 하나님이 들어 쓰셨다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고백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사역은 10년 전인 2007년 샘물교회 사건 이후 한국인은 들어갈 수 없는 아프간에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강남의 한 차고 한편에 놓인 컨테이너 박스를 사무실 겸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서 대표를 최근 찾아가 만났다. 한기가 도는 차고안 사무실 벽면 가득 아프간 지도와 사역 소개가 붙어있어 그의 사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 대표가 아프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쪽방에 살던 그는 고교 때인 1984년 예물을 다 팔고 간신히 비행기표를 마련한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 가서 잘 살고 싶었다. 가자마자 닭 튀기는 일부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다 했다. 20대 후반 의사자격증이 있으면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의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고생하는 어머니와 동생을 보며 자신의 학비를 직접 벌기 위해 일을 하다 3, 4학년을 마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설립한 재봉 기술 학교에서 과부들이 기술을 배우고 있다. 힘펀드코리아 제공

2008년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지자 미군에 들어갔다. 2000년도에 파산한 기록이 있어 40세의 나이에 장교가 아닌 졸병으로 들어갔다. 20대의 젊은 군인들이 명령하고 함부로 대하자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하나님, 의사도 안 시켜주시고 이 나이에 졸병으로 들어오게 하시고 이게 뭡니까."
하나님에 대한 원망, 자신에 대한 원망을 하며 1년 동안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살았다.

2009년 1월 아프간에 의무병으로 파병됐다. 3대에 걸친 모태신앙이었으나 아프간의 참혹한 실상을 본 후 드디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다. 물질만 좇던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그는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현지 노동자들만 치료하고 외부인은 치료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신발 한 켤레가 없어 맨발로 3일을 걸어온 노인을 치료해주고 의료품을 잔득 안겨 돌려보냈다. 그러나 한 켤레밖에 없는 자신의 운동화를 내어주지 못하고 맨발로 돌려보낸 후 심한 가슴앓이를 했다. 

치료를 받으러 온 할아버지의 상처 난 발. 힘펀드코리아 제공

“그때 하나님이 아프간을 향해 아파하는 그 마음을 제 마음 속에 넣어주셨습니다. 쇠꼬챙이 끝을 불에 달궈 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 뜨거운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긍휼의 마음이었습니다.”

이 뜨거운 마음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한 게 구제사역이 됐다. 블로그를 개설해 미군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기부를 요청했다. 전 세계에서 헬기가 떠야 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신발, 학용품, 장난감, 옷, 각종 구제품들을 보내줬다. 미국 유명 배우 게리 시니스는 신발 200켤레를 보내왔고 추수감사절에 직접 부대를 방문해 아프간인들을 위로했다. 이 구제품들을 가지고 7가지 사역을 하며 1년 동안 3000명을 돕는 큰 역사가 일어났다.

힘펀드코리아 제공

7가지 사역은 문맹 탈출을 돕는 문맹반 운영, 의료 봉사, 어린 아이들에게 신발과 옷, 학용품을, 군인들에게 신발과 옷을, 경찰에게 미군 군화를, 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신발을, 난민촌을 찾아가 생필품을 나누는 일이었다.

“이것은 졸병의 신분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모슬렘 국가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며 90%이상이 문맹인 여성, 그보다 더 비참하게 살고 있는 과부들을 돕기 위한 재봉학교를 설립키로 결심했다. 

2010년 10월 아프간 수도 잘랄라바드에 첫 재봉학교를 세웠다. 3개월 과정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6개월로 늘려 3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아프간 성인남자의 한 달 평균 수입이 40~60달러인데 재봉학교 졸업생들은 60~200달러를 벌고 있다. 아프간 관례 상 과부는 부모나 죽은 남편의 형제와 함께 살아야 하지만 더 이상 남자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풍요롭게 살고 있다. 

졸업생에게 주는 재봉틀. 힘펀드코리아 제공

“졸업생에게는 재봉틀을 줍니다. 아프간에는 전기가 없어 수동이에요. 60달러하는데 후원이 필요한 부분이지요."

2014년 3월 제대 후 재봉학교 운영 외에도 문맹탈출을 위해 산수를 가르치고 언어 읽기, 기초위생보건 교육 등 4가지 힘펀드 사역에 주력하고 있다.  

서 대표는 이런 작은 재봉 기술 학교들을 아프간 전역에 세워 소외 받고 희망없이 하루 하루를 구걸이라도 해서 버텨가야 살 수 있는 과부들과 고아들에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더 나아가 교육과 제품의 질을 향상시켜 아프간 내에서 뿐만 아니라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을 비롯해 한국과 미국 같은 선진국까지 우수한 상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전했다. 서 대표는 한국이나 미국의 뛰어난 재봉 전문가들이 재봉을 가르칠 수 있는 교재나 영상, 또 우수한 기술과 디자인 등을 지원해 주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봉 학교를 다니기 전 비참한 쿠디자와 자녀들(위), 재봉 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고 풍요로워진 쿠디자 가족. 힘펀드코라아 제공

"교회나 회사에서 아프간 사역을 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이와 함께 아프간을 돕는 일에 많은 분들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서 대표는 마가복음 10장 27절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란 구절을 통해 확신을 얻고 "불가능을 꿈꿔라!"란 모토로 오늘도 매 순간 하나님이 역사하시길 기도하고 있다(www.hemefun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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