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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기독교, 19세기 말 20세기 초 대부흥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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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선교 역사

 

무슬림이 95% 이상을 차지하는 파키스탄에서 기독교 역사는 그리 폭넓게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파키스탄의 기독교 인구는 3% 수준. 그것도 19세기 후반 불가촉천민 계급인 ‘추흐라’를 통해 집단개종운동이 시작되면서 이 정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와 그 이후의 상황을 파키스탄에서 30년간 사역한 영국의 프리다 캐리 선교사(Church Mission Society 소속)가 정리한 자료를 번역, 소개한다.

 

캐널 컬러니(canal colony)로 이주

 

1880년대 추흐라 계급의 엄청난 회심자들로 인해 미국합동장로교회(UP) 선교회의 방향과 교육사업 정책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상류카스트에서 불가촉천민(손이나 발이 상대편 몸에 닿으면 안되는 사람들, untouchable)에게로 선교 지역과 대상이 달라졌다.

 

이후 1890년대, 추흐라 복음운동은 영국식민정부의 ‘캐널 컬러니(canal colony)’ 정책으로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았다. 영국은 인구밀도가 낮고 황무지였던 펀자브 서부지대에 물을 대고 농작물을 경작할 수 있도록 수로를 건설했다. 그리고 펀자브 중부 지역의 인구 밀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이민자들을 이 지역으로 보내 정착하게 했다. 이때 무슬림, 시크, 힌두 지주의 농장에서 일하던 많은 추흐라들이 주인을 따라 이주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기독교인이었다.

 

수천 명의 기독교인이 체나브와 라비 강 사이에 걸쳐 있는 장 바(Jhang Bar) 지역으로 이주했다. 선교사들과 목사들도 비기독교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기 위해 기독교 이주자들을 따라 새로운 수로 주변에 형성된 캐널 컬러니로 왔다. 이 지역에 있던 비기독교 추흐라 계급들이 복음에 반응했고 교회는 계속해서 커져갔다.

 

정부는 새롭게 조성된 캐널 컬러니에 땅이 없는 추흐라 회심자들이 재정착할 수 있도록 선교 단체에 토지를 할당해 주었다. 1898년, 정부는 당시 그곳에서 사역하던 선교회(Church Missionary Society)에 땅을 주었고, 장 바 지역에는 몽고메리왈라와 이사 나그리라는 기독교 마을이 세워졌다.

 

스코틀랜드 국교회(the Church of Scotland)와 연결된 기독교인들이 세이쿠피라에 있는 영소나바드의 캐널 컬러니 마을에 정착했다. 마니푸르 근방에 있는 UP 마을 쿠시푸르의 가톨릭 마을 등도 같은 때에 자리를 잡았다. 1914년에서 1930년 사이, 라비 강 남쪽 새로운 땅에 다양한 선교 단체의 지원 아래 9개의 기독교 마을이 더 생겼다. 수천 명의 충성된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추흐라들이 이 지역으로 새롭게 이주했다. 정부, 이주한 기독교인에게 토지 제공하기도

 

교회 성장의 새로운 원동력은 1896년과 1904~10년에 일어난 대부흥 운동(영적각성운동)을 통해 일어났다. 1896년 대부흥 운동은 주로 교회의 리더, 목사 그리고 신학교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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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에 시작된 대부흥 운동은 인도판 ‘케직’(19세기말 영국의 부흥의 중심에 있던 도시)이라고도 불리는 시알코트 대회를 통해 전 교회로 확산되었다. 이 대회는 처음 2년 동안은 선교사들과 국가 관련 직원들만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06년부터 모든 교파의 일반 기독교인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믿음이 새로워짐을 느꼈고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추흐라 배경의 신자들이었는데, 그들의 열심은 훗날 회심하지 않은 추흐라들 가운데 교회 성장의 열매를 맺게 했고, 이미 기독교인이 된 신자들에게는 더욱 영적인 삶을 살도록 했다.

 

1900년에서 1930년은 파키스탄 교회사에서 전례 없는 성장의 시기였다. 단지 수적인 증가뿐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까지 성숙해 가는 과정이었다. 

(영국의 프리다 캐리 선교사, Church Mission Society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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