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gma posted Apr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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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명 아가페선교교회
설교자 강진구 목사
성경본문 히브리서 5:5-7


   중보 기도의 위력(히 5:5-7) - 강진구 목사
▼동영상 설교보기

   제사장의 기도(히 5:5-7)
 2017. 4. 23 아가페선교교회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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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까지 목회를 해 오면서 우리 가족들을 위해 별로 기도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가족보다 주의 나라를 위한 기도가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예수님은 저의 가족들과 살림살이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자비로운 대제사장이 되셔서 늘 중보기도를 하셨고,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간구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하는 일은 성전에서 제사에 관한 일을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백성들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입니다. 즉, 인간과 신 사이에서 중보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히 5:2)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라” 제사장은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사장에게 이런 측은지심이 없다면 중보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이런 마음이 없기에 제사장이 되지 못합니다. 

무당이나, 점쟁이, 그리고 이단은 무섭습니다. IS의 만행을 보십시오. 공산주의는 ‘사람이 먼저다’ 혹은 ‘사람 중심’이라고 하면서도 긍휼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중심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세상은 금방 짐승 같이 약육강식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말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종교나 제사장이 있었고, 그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유대교 역시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이러한 제사장이 없으므로 유대교에서는 이를 공격의 호재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교의 공격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다”(히 4:14)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대제사장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삼상 2: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연구해 감에 있어서 아론과 멜기세덱이라는 두 모형적인 인물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탁월함을 예표하기 위해 필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을 세우신 목적은 주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예표해 주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레위의 반차를 쫓은 제사장의 사역과 직무는 끝이 났습니다. 제사장을 세운 목적이 이루어졌고, 본체가 왔으므로 이런 것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히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주님이 레위 지파에 속한 분이 아닌데 어떻게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을 그리스도로 칭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메시야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이어야 함을 증거합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의 직분을 스스로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높은체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의 모양을 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높이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가 우리의 중보자가 된 것이 그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중보자로 취하신 세 가지 중요한 직무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성경에는 선지자나 왕의 직무를 위하여 세움을 받은 것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지 않았으나, 제사장의 직무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맹세하셨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제사장 직무에 관해서만 나타납니다. 
(시 110:4) “여호와는 맹세코 변치 아니하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편 110편은 신약 기독론의 근거가 되는 참으로 중요한 구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실 만큼 중요하고 존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바로 그리스도의 왕직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시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애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을 인용하여 그리드도의 중보자적인 권위가 하나님께로서 온 것임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인 그리스도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선포합니다. 중보자 즉, 제사장이 되심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너는 제사장이라”라는 말씀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언약에 대한 선포요 성부의 영원한 경륜에 대한 선언의 말씀입니다. 그 영원한 경륜 속에서 성자께서 이 직무를 감당하도독 계획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의 손에 세례를 받으신 것은 그가 제사장적 직무와 사역을 위해서 인증 받으신 것을 뜻합니다. (마 3:17) “말할 때에 홀련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를 인증하셨습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주님은 육체로 계시면서 죄없는 연약 가운데 쌓였습니다. 주님은 연약과 낮아짐의 상태에 처하셨습니다. 주님은 주님과 목마름과 피곤함과 질고와 슬픔을 몸소 다 체험하셨습니다. 주님은 질고로 가득찬 슬픔의 사람으로서 슬픔을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아버지 앞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장적인 행동이고 기도입니다.  
간구와 소원은 인간의 연약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천사들은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성부의 명령에 순종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적인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을 연약 가운데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슬픔의 사람일 뿐 아니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 속에서도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의 영적인 고뇌는 구원을 위해 심히 통곡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발등상(하나님의 임재의 장소) 아래에 나아갈 때에 믿음의 대상으로서 그리스도의 전능하심을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은 용기를 얻고 믿음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주권을 생각할 때에 그 앞에 겸비한 자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기도하되, 보다 겸손한 자세로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심판과 통곡과 눈물로 간구한 것은 저들의 심판과 죽음을 내다보셨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은 죄의 삯으로서 죄로 인한 하나님의 율법의 저주 곧 자기 백성을 위한 죽음입니다. 자기 백성의 죄를 짊어지신 주님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저주와 심판에서 건져낼 자가 아무도 없음을 아십니다. 도와 줄자도 없으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죄의 무서운 진노의 엄청난 무게를 홀로 담당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시고,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으로 가득했으며, 심판 눈물과 통곡으로 간구하셨습니다. 주님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이는 바울의 경우와 흡사합니다. 바울은 그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는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시련을 참아내고 승리할 수 있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경우에도 겟세마네의 기도를 천사가 대신한 것이 아니라, 천사가 주님의 기도를 수종 들었습니다(눅 22:43). 주님의 간구는 십자가의 고통을 극복하고 승리하도록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에서 능히 그를 구원할 평강의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감당하셨습니다. 그의 육체는 저주와 심판을 당하셨습니다. 그의 육체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 얼굴을 외면해야 했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지옥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구원을 위해서 울부짖었습니다. 대제사장이 되신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얼마나 깊은 데까지 낮아지셨습니까? 주님의 고뇌는 얼마나 큰 것입니까? 죄를 속하기 위해서 그만한 고통을 당하셨다면, 그 죄란 얼마나 극악한 것입니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얼마나 크고 가공할만한 것입니까? 그 죄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이 그토록 고통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큰 것입니까? 그 큰 사랑을 버리고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외모를 보고 미워하고 시기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무서운 심판을 바라보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제사장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왕같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담대하게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멜기세덱이 예수이며, 하나님의 충실한 제사장이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삼상 2:35). 다윗은 이 엄청난 비밀을 어떻게 믿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적인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국의 열쇠를 주었습니다. 다윗 주변에 모인 자들은 Loser 들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자들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나라를 통일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택한 족속이고 거룩한 나라요 왕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9). 우리가 이웃과를 위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때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윗과 같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으려면 어떠한 열정이 필요할까요? 그 큰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사랑을 드려야 할까요? 이 시간 우리는 감사와 찬양으로 드려야 마땅하기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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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선교교회(담임: 강진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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