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목사] 샬롬의 복(3), 샬롬의 공동체성과 사회적 책임

by kim posted May 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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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목사] 샬롬의 복(3), 샬롬의 공동체성과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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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슥 7:10)

 

‘샬롬’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전체로 그 의미의 지평이 확장되어야 한다. ‘샬롬’이 공동체의 온전함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샬롬’의 궁극적 지향점은 개인적 '샬롬'의 복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조화로운 공동체이다. 이는 인간의 존재양태가 단독자가 아닌 공동체의 구성요소라는 성경의 강조와도 일치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단수형이 아닌 ‘남자와 여자’의 복수형이다(창 1:27). 아담과 그의 아내가 ‘돕는 배필’로서 존재하는 것도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인간관을 잘 보여준다(창 2:18).

 

인간이 공동체적 존재임을 잘 보여주는 성경 내용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비유이다. 이들 비유에 등장하는 공통점은 모두가 복수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은 백 마리의 양 가운데 하나이며, 잃어버린 드라크마도 열개 드라크마 중 하나이다. 그리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들 역시 두 아들 중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찾았다는 즐거움은 잃은 것의 되찾음에 머물지 않고 찾은 그것을 통하여 전체가 회복된 것과 연결된다. 남아있는 99 마리 양이나 9개의 드라크마, 그리고 집에 있던 큰아들은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들 곧 ‘샬롬’이 결여된 ‘에인 샬롬’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을 되찾음으로서 남아있던 것들은 비로서 온전한 ‘샬롬’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온 동생을 영접하지 않고 불평을 털어놓는 큰아들의 모습은 참된 공동체 ‘샬롬’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그렇다면 공동체 ‘샬롬’의 기본적 의미는 무엇인가? 공동체에 속한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소외됨이 없어야 한다. 구약시대 가장 약하고 소외되기 쉬운 계층이 고아와 과부, 그리고 이방나그네였다. 이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활동 자체가 보장되지 않았다. 성경은 이들의 삶을 국가와 같은 공적 기관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이 깊은 관심을 갖고 돌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이들이 처한 상황이 곧 이스라엘 공동체의 건전성을 측정하는 기준이라고 보았다.

 

구약시대 대표적인 사회적인 의 가운데 하나는 약자 계층들을 위한 배려였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들에게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이라고까지 하였다(잠 19:17). 이스라엘에서 약자계층을 돕는 구체적인 제도로는 두 번째 십일조와 이삭 나눔, 그리고 구제헌금을 들 수 있다.

 

(1) 두 번째 십일조는 매년 드리는 정기 십일조와 달리 매 3년마다 드리는 구제 목적의 헌금이다(신 14:28). 정기 십일조는 하나님의 성소에 드려지는 헌금인 반면, 구제 성격의 또 다른 십일조는 각 성읍에 저축하여 놓고 있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2) 또 다른 형태의 구제 제도는 추수를 거둘 때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얼마를 남겨 놓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제도의 사례로서 몇 가지 예가 있다. 밭에서 추수를 위하여 곡식을 벨 때 곡식 묶음 하나를 잊고 왔으면 다시 그것을 가져오지 말고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그대로 두었으며, 감람나무의 열매를 다 떨고 나서 남은 것이 있는지를 살피지도 말아야 했다. 포도원에서 포도를 딴 후에도 남은 것을 다시 따지 않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었다(신 24:19-22). 다른 성경에서는 곡식을 거둘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며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다(레 19:9-10).

 

(3) 구제헌금을 모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제도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전통이다. 초대교회에서도 교회가 구제헌금을 모아 가난한 과부들을 공궤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었다(행 6:1). 그러한 제도는 교회시대 이전부터 시행되어 왔다. 마가복음 12:41은 어느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의 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성전 안에 마련된 이 헌금함은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 헌금함이었다. 당시 성전뜰에는 나팔모양을 한 13개의 헌금함이 마련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모아진 헌금은 전적으로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 헌금으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소개하신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구제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비 전체를 그 연보함에 넣었다. 가난한 과부이었지만 자기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의 배려를 보신 예수께서 그 과부의 헌금을 부자가 넣은 많은 양의 헌금보다 더 높이 칭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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