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林泉) 박종명(朴鍾明)) 연보(年譜) (일대기)

by wgma posted Oct 02, 2017 Views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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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천(林泉) 박종명(朴鍾明)) 연보 (年譜) (일대기

   성명:jong Myong Park 1926.6.30.

현주소:8812 Dewees St. Philadelphia PA19152 전화:215 698 2548. HP:215_410_1151


박종명-병희51.JPG


1926년 전북 익산시에서 출생. 밀양(密陽) 박씨(朴氏) 71대손 중시조 규정공파(糾正公派) 26대손이며, 낙촌공파{駱村公)) 16대손이며, 봉례공파(奉禮公派) 14대손으로, 전북 익산시 용안면 대조리 652번지에서 출생.

1944: 전북 익산시 낭산면 석천리 경주(慶州) 김씨(金氏) 병희(炳姬)님과 처가 마당에서 전통혼례식에 의한 결혼식 거행 (1944.4.21)

1933: 조부님으로부터 한문,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사자소학(四字小學 등 학습(學習)


*참고: 당시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만 입학하려고 해도 어려웠 다. 지금과 같은 의무교육이 아니어서 입학금과 월사금을 내야 했다. 그래서, 여자는 가사나 돕고 일찍이 시 집가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으니, 얼마나 불공평하고 불 행했던 과거 역사의 일면이었나. .

1935:용안공립보통학교 입학 (먼 십리길)

1941:용안공립보통학교 졸업

1041:검정시험으로 사립개성송도중학교 입학 (일본인 교장과 사상 적 불화로 추천서를 써주지 않아 부득이 검정시험을 보 게 됨.

1945: “이제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라는 방송 청취와 환호 (8.15)

내가 개성에서 학생 시절이어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8,15 정오 독립운동가 동아일보 사장 민세 안재홍(安在鴻) 선생이 정 오 방송을 통해 한국이 이제 해방되었다고 하는 방송을 했다. 그때의 기쁨과 만세 부름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던 그 당시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946: 개성 송도중학교 졸업 (6.30)

1949: 서울 국학대학 졸업 (후에 고려대학과 합병)

1950: 한국전쟁 발발. 한국의 남북전쟁, 지구상 세계의 잔존한 유 일한 분단국가 (6.25 전쟁)

나는 서울에 있었다, 집이 신설동이었고, 미아리고개에서 터져 나오는 대포소리를 더 빨리 들을 수 있었다. 하루빨리 고향집에 가기로 결심하고 가까운 몇 친척과 의논 끝에 주민증을 발급받고 친척 일부와 밤에 출발을 했다, 낮에는 비행기 폭격으로 갈 수가 없어 밤으로만 걸어서 고향 집으로 1주일 만에 구사일생 기진맥진 끝에 돌아왔다. 전쟁 중이라 사먹을 곳도 얻어먹을 집도 없어 밭에 가서 오이 참외 등 닥치는 대로 훔쳐도 먹고 사먹기도 해가며 꼬박 일 주일 만에 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부모님과 아내가 학수고대하고 있다가 죽은 사람이 살아온 듯 반기었다. 이때의 얼싸안고 포옹하던 모습과 기쁨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아버님은 뒷밭에 원두막을 짓고 매일 기다렸다고 한다. 이후 잠간 숨어 있다가 좀 안정이 되었을 무렵에 모습을 드러내니 이때는 악몽 같은 꿈에서 깨어나는 듯 했었다.

1951: 교육공무원 중등교원 재직 (4:1)

1951: 군인 면제 (교육공무원과 학생은 군인 징집 면제를 받았다).

1967: 교육공무원 퇴임 (17년간 근속): 주요근무지 김제중고, 전주 공고, 전주여상, 함열중고,

교직 재직중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 한 토막

함열농고 재직시의 일. 당시 3학년 담임으로 있었을 때의 실화

가을단풍 절정기에 단풍관광하기 위해 내장산으로 결정하고 3 학년 학생 약 30명이 출발하여 내장산 내장사에서 숙식을 하는데 광주 모 고등학교 학생도 내장사에서 함께 만나게 되었다. 두 학교 학생끼리 말다툼이 벌어져 시비가 되고, 결국 두 학교의 싸움으 로 확대되어 집단 편싸움으로 번져 이를 막기 위해 내가 주지스님의 옷을 입어 변장하고, 학생대표와 만나 싸움을 말렸다. 우리 편 이 수적으로 약해 보여 새벽에 일찍 귀가 조치해 돌아왔다, 잠시 의 기지로 수난을 모면한 일은 지근도 잊을 수 없디.

1967: 서울 특정외래품판매회사(외화 획득을 위한 COMMISSARY) 임원으로 재직

1972: 서울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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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서울은 내가 이주 전까지만 해 도 조용했었다. (5.18)

1984: 미국 필라델파아 이주 영주권 획득 (84.5.22)

1984: 필라델피아 한인노인회 임원

1986: 노인회 사무총장

1987: 미국 오기 전에 결심했던 일, 액국사업 일환으로 대한민국 을 상징하는 무궁화 묘목을 사위 정병준 집에 재배하여 동포 희망 가정에 무료 배부하기 시작했다.

1987:17대 한인회장 우종수 감사패 수령. (9.26)

1588 18대 한인회장 임보현 감사패 수령. (12:16)

1989:18대 노인회장 정진홍 공로패 수령 (12:10)

1989:19대 노인회장 김인환 공로패 수령 (12:9)

1989: 대한민국 외무부장관상 수상

1989:한인노인회관 건물 매입추진위원 선임(노인회원 전체가 위원 이 됨. (89,1.28),

1990;필라한인노인회관은 당시 병원 자리로 사용하던 건물을 회장 김인환 씨 명의로 $118,000에 매입했다. 모금에서 $90,000, Morgage $28,000로 완결. 위치는 224-30 E. Taber Rd. (90.10.24)

1991:건물 개조수리를 건물조잉부터 변경하고 우리 모이는 회관에 알맞도록 칸막이를 없애고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새로 넣는 등 구조 변경 수리비에 $30,000 이상 지출됐다. 이때 고 윤게득씨가 총감독으로 수고를 많이 하셨다.

*회관 2층 방 3개에 월세 $1,025 수입되어 회관 경비로 사용했 었다. 그런데. 현재는 이를 매각하여 아직도 회관을 마련하지 못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1991:필라한인노인회 제20대 회장 박종명 취임.

1991:가정용 액자 태극기와 인쇄물 애국가, 통일의 노래를 보급하 기 시작. 실내에 거는 액자용 태극기는 고 문종운씨가 제 작했고, 벽에 붙이는 애국가 인쇄되어 있는 태극기와, 통일의 노래 인쇄물은 서울에서 반입하여 희망자에게 무료로 배부 했으며, 지금도 배부하고 있다.

1991: 필라한인노인회관 개관식. (7,13)

1991: 필라델피아 제21대 노인회장 김충근 공로패 수령 (7:31)

1991: 필라델피아 범동포한인도서관 설립위원장

1991: 본인이 서울에 나가 문공부와 도서출판협회 등 관게기관을 방문하여 미국에도 이제는 한인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하 여 승낙을 받고 수집은 서울 맞 사위가 보필하였다. 이 도서 확보를 위해 3번 서울을 왕래했다. 아주 고귀한 재산인데 지금은 노인회관을 매각하여 한인화관과 합쳐 Rising Sun 위치 (지금은 다시 매도)로 이전하면서 관리 보관을 안 하 고 방치하여 흔적도 없으니 원망스럽고 누가 책임질 사람도 없으니 더욱 한탄스럽다.

1991: 운송은 정병준 사위의 친구 내가 잘 아는 군포 대흥포장 주식회사 이창범 사장의 도움을 받아 사비로 도서 약 3,000 권을 선적 운송해와 진열하고 약 200 여권은 서재필센터에 기증했다, 관련한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고 아주 고맙게 여 긴다.

1991:도서관 개관 준비

도서관 마련을 위해 당시 한인회 박무성 이사장이 사비로 벽 창가에 책꽂이를 만들어 주었고, 한인회장 신희자씨가 사비로 의자 100개를 기증하여 물적 준비를 마쳤다, 상주 직원은 당 시 서재필센터에서 관장하고 있던 NAFCA 직원으로 고 정대 순과 고 이병근 사무총장을 유급 직원으로 확보하고 잠시 근 무했으나, 회장이 바퀴면서 모두 그만두었다고 한다,.

1991:한국 kBS 방송국 아나운서와 대담방송 (미국 노인들의 현 재와 미래에 대한 대담 (10.24)

1992:펜실베니아 아시안협회장 시민봉사상 수상 (5.29)

1992;3차 도서 반입과 책꽂이 서가와 직원 확보하고 개관식 준 비 완료(6:30)

1992:필라델피아 제22대 한인회장 신희자 감사패 수령 (7:9)

1992:미국에서 유일한 한인노인도서관 개관식 (8;8)

1992:펜실베니아주 시민봉사상 수상

1992:펜실베니아 한미우호총연합회 시민봉사상 수령 (10:25)

1993:한국의 얼 전하기운동본부 대표 한기석 도서기증패 수령 (3:13)

1993:필라한인노인대학 창설 개교. 미국에서 최초 개설(93.6.10) 1993:필라한인노인회와 미네소타주한인노인회와 자매결연식 (6,11)

1993: 미네소타한인노인회원 필라 방문 약 60여명 PEACE VELLE PARK에서 합동야유회 개최 (6.12)

1993:필라한인노인대학과 한국평화노인대학 (중계동소재) 자매결 연식 필라노인회 임원 간부 다수 한국에 나가 참석하였다. (93.9.27)

1993:자매결연 후 서울 평화노인대학 임원진 필라 방문하여 학 예 합동발표회 개최 (11;27)

1994:미국동부지역 노인연합회장 취임

1994:필라델피아 제24대 한인회장 나문주의 공로패 수령(5:21)

1994:필라노인대학 재1회 수료식 (5,25)

1995:한국민속놀이마당 창립 회장 (95.7.1)

1995;필라노인회장 (2차취임)

1995:한국전 미군참전용사 재향군인회에 행사용 대형 태극기(깃 대,깃봉,깃폭,멜방) 케이스들 셋트 기증식 (3차레에 150 셋트 기증) (95.8.21)

1995:동아문화센터(Asian American Cultural Society) 창립 회장

1996: 미국시민권 받음 (96.5.8)

1996: 필라델피아 통합한국학교 추진공동위원장

1996: 고희 겸 금혼기념식 (결혼 50주년) 축하식

1997: 세계평화복지인물상 수상 (서울에서 97.10.28)

1997: () 대한민국충효국민운동본부 필라델피아지부 창립 회장 1998: 한국전 참전 미국용사에게 제2차 대형태극기 기증식 (5.30)

1998: 트랜톤한국학교 이사장 김광성 감사패 수령

2000 9KBS 해외동포상 후보로 미주동아일보 임보현 사장이 추천하여 예심은 합격하고 결심 심사에서 낙천되는 안타까움 을 겪었다. (12,1)

2002: 한국민속놀이마당 창립 후 2002.9.22까지 7년간 총 공연 횟 수 82회 공연을 마치고 해산 (1995--2002)

참고로, 주요 회원명단을 보면, 대표 박종명, 단장 박연배, 총무 이용은, 고문 고 이용식 고 윤게득, 고 석형보, 고 김희겸 단원 박병희, 박옥식, 이순숙, 유명석 이종대 고 김현철, 고 박부자 고 이범호 고 이원경, 고 권양순 김인순, 이영순, 신현석, 이동섭, 장진백 김영태 탈춤 등이다. 세월은 유수 같고, 가는 세월을 잡지 못했다.

2006: 한국전 참전동지회 지역회장상 수상 (10:25)

2007; 3차 노인회장

2009: 대한노인회총연합회 총회장(이 영송)이 필라델피아 지회장으 로 위촉(4;22)

2010: 대힌민국 충효대상 수상 (5:27)

2014: 미주효사랑문화원 창립 이사장 (미주 최초)

2014: 88세 미수연(米壽宴)) 충효는 내 삶의 좌우명책자 발간 (고바우 지하홀에서 6.29-오후 4:00)

2015:신장 악화로 주 3회 투석 시작. 투석하지 않는 날. ,,. 일요일은 나의 집 가까운 곳에 이명숙씨가 한국인 대표 원장으 로 있는 Circl of friends 경로센타에서 주 4회 게속 식사와 운 동을 하고 있으니 여한이 없네요, (15.2.25-현재 게속)

2015:대한노인회 미주총연합회 동남부광역지회장 위촉 (4.9)

2017:필라델피아 시의회에서 한국의 날에 한국인 유공자에게 수 여하는 공로상 수상 (1:13)

*첨고: 한국 최초의 미국 이민자 103인이 하와이에 첫 상륙한 날 113한국의 날로 필라델피아 시의회에서 제정하고 한국인 유공자에게 공로상을 수여함,


*여행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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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을 답사하고 명산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한라산 등을 등반했고, 유명 사찰도 탐방하며. 한국 성지순례, 유럽 성지순례와 유명 나라들을 관광했고, 일본,중국,(북경,상해,항주,소주,계림,장가게,원가계,서안,하루빈,연변).

등과 마카오, 월남, 말레이지, 인도네시아, 앙코르 왓, 홍콩,대만

호주, 뉴지랜드, 카나다 퀘백, 록키산맥 미합중국의 일부만 뻬고는 하와이, 알라스카, 대부분의 주와 관광지를 관광했으니, 여한이 없소이다.


*오늘의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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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장 애석하고 한스러운 일은 노인회 회관을 총회 공론 도 없이 당시 회장이 매각하고 오늘 현재 이리저리 전전하고 있는 실상이요. 또한 어렵게 마련한 도서관을 없애고, 공든 탑이 흔적도 없이 없어져 매우 한탄스럽다.

그래서, 1,2년제 단기 회장 임기제에서는 장기 사업을 목표로 하는 것은 어렵다는 교훈을 남겼다.

2. 회관 마련 모금행사에 적극 참여해주신 동포 여러분과 단체, 그리고 홍보해 주신 언론사 동아일보 임보현 사장과 선데이 토픽 신재렬 사장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한다.

3.본인이 노인회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회장으로 모셨던 이미 고인이 되신 정진홍씨 두 번, 조상현, 손완영, 김인환 회장님의 명복을 빌며, 오늘의 현실을 보고합니다.

4.본인이 노인회의 대부라는 호칭을 받고, 노인회에 30 여 년간 전념하면서 충효국민운동 17, 민속놀이마당 7년을 게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그림자처럼 함께하여 부창부수(夫唱婦隨) 함께한 역할과 가족들의 믿음과 후원 협조의 결과라 생각하고 고마움을 표한다.

5.나날이 바쁘고 날뛰었던 과거가 어떻게 이루어졌었나 하는 의문을 남기고 일장춘몽의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맴돈다

끝으로, 노인회의 무궁한 발전과 노인회원의 건강을 빈다,


현재의 삶

2011-02-20 오후 8;28;29.JPG


1 현재의 행복: 무녀독남과 무남독녀가 백년가약으로 만나, 자녀 7인에 자부,서랑 14인과 기혼 손자와 손부 16명 미혼손자 8명에 증손 10명 모두 50명 대가족을 이루었으니 이만하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품은 대장부 만족하외다,

2현재의 삶은 SENIOR DAY CARE CENTER에서 오랜 친구 향은(響隱) 길병관과 죽강(竹江) 심명수 전임 노인회장을 만나 소일을 하고 있으니, 더욱 행복하게 여기며, 공자님의 글귀가 생각난다. 논어(論語) 학이편(學而扁)에서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 불역열호(不亦悅乎)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스스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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