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2) 마지막 만찬
마지막 만찬
(마태 26;17-30)
1. 유월절 준비(17-19)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예비)하였더라"(17-19).
무교절(無酵節)은 유월절 다음 날인, 유대의 달력으로 니산 월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한 주일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로, 무교병을 먹는 절기다. 첫날이라면 14일 저녁부터라야 하는데 예수님의 만찬이 13일이었기 때문에 것을 생각하면 12일 쯤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아무튼 제자들이 어디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길 원하시나이까? 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을 성내로 보내면서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준비하라고 하셔서 마침내 그렇게 준비를 하게 된다(눅 22;7-23절 참고).
유월절 최후의 만찬자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죽음을 앞에 둔 시점에 두 사람의 무명의 봉사자들이 있었다. 하나는 벳바게의 나귀새끼를 제공했던 사람과 지금 유월절 최후 만찬 자리를 제공한 사람이 무명의 봉사자였다. 왜 이 사람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안했을까? 이것은 본인들이 은밀하게 하길 원해서 그랬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이 사람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본다.
한사람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무명의 아름다운 봉사자들이었다고 보여 진다.
2. 그가 나를 팔리라(20-23)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20-23)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이것이 유다를 향한 다섯 번째 회개의 기회를 준 권고였다. 하나님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금방 형벌을 집행하신 분이 아니다. 범죄를 계획한 자일지라도 계속해서 죄에서 돌아설 것을 권고 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죄에 감염된 인간의 마음은 돌아서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3.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24-25)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 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 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 하였도다 하시니라"(24-25)
예수님은 제자의 손에 팔려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라고 한 이 말씀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미 예언된 대로 가시는 길이지만 유다는 그 예언 성취를 위한 나쁜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 마음 아픈 사연이 아닐수 없다. 그러면서도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돌이키는 회개의 기회를 몇 번 주시면서 애를 쓰셨다. '네가 말 하였도다'라고 6번째 권고였다.
연극이나 드라마에서도 악역을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도 반드시 악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역사가 만들어져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제자 한 사람이 악역을 맡은 일은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심령에 민망하여'(요 13;21,개역한글) 혹은 '심령이 괴로워'(개역개정)하셨다고 기록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했을 것이라고 하셨을까?
평소에 품은 마음이 언젠가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선을 품으면 선의 결과를 악을 품으면 악의 결과를 만들게 된다. 본문의 유다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평소에 무슨 마음을 담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4.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축복(祝福, Blessing)이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말한다. 히브리어로는 ‘바라크’(barak)가 주로 쓰였는데,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의미로 쓰일 때는 주로 물질적인 번영이나 정신적인 복락을 의미하고(창 39:5; 시 24:5) 하나님을 향해 쓰일 때는 하나님을 경배하다, 찬양하다는 뜻이었다(창 24:48; 신 11:29; 시 66:8). 사람이 사람을 축복하다는 말에 쓰일 때는 앞날을 기원하거나 재산이나 권세를 나누어 주는 것(창 14:19; 24:60; 27:4; 31:55; 48:9; 출 12:32; 수 14:13; 삼상 2:20; 삼하 8:10; 왕상 1:47; 대상 16:2; 롬 12;14) 등을 뜻하는 것이었다.
성찬식에 대한 내용이 누가복음(22;19)과 고린도전서(11;24)에는 '성찬식'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기념하라는 말씀이 있다. 성찬론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바울에게서 제기되었다. 그 후 사도교회를 지나 교부시대에 들어서면서 끈질기게 논쟁해온 것이 성찬론이지만 사실은 지금껏 속 시원한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성찬에 대한 여러 교파들의 주장한 내용을 소개해보면,
(1)화체설이다. 이것은 떡과 포도주가 실재로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된다는 설로 카톨릭이나 동방교회가 믿는 설이다.
(2)공재설은 그리스도가 성찬에 함께 있다는 공재설 혹은 현실적으로 임재 한다고 해서 현실적 임재설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루터파의 주장이다.
(3)상징설은 쯔빙글 리가 주장한 이론인데 떡과 포도주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미한 것이라고 해서 사실상 상징설을 말한다.
(4)기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는 말씀에 근거해서 기념 설을 주장한다.
칼빈의 성찬론에 대해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리스도교대백과 사전에 보면, '그리스도의 혈육은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실재하지만 신도는 성찬에서 성령의 의해서 높이어져 하나님 우편에까지 이르러 여기서 그리스도의 혈육과 만난다는 주장이다.(그리스도교대백과 사전 532쪽) 이설은 별로 지지를 못 받는 이론인 듯이 보인다.
5.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29-30)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9)
지상에서 마시는 포도주는 이제 더 이상 마실 이유가 없다. 27절에서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하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는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안약의 피니라'(28)고 하셨다. 이 자리에서 마시는 잔은 죽음의 잔이란 뜻이다. 한번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완성된 잔을 또 마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 제자들과 온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마실 잔은 아버지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에서 새것으로 축하의 연회장에서 마실 축배가 있을 뿐이다.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30)고 했다. 감람산(Mount of Olives)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해발 841m의 산이다. 이 산은 감람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감람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1)구약에서 감람산은 다윗이 비참한 모습으로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삼하 15:30), 스가랴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할 때(슥 14:4) 언급되었다. (2)신약에서는 예수님과 관련되어서 자주 나타나는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눅 19:37), 세상 종말에 대해 가르치심(마 24:3), 낮에 가르치시고 밤에 쉬심(눅 21:37),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와 잡히심(마 26:30, 36; 막 14:26, 32; 눅 22:39)과 승천(행 1:9-12) 등이 일어난 장소였다.
감람산에 무덤이 많은 이유는 감람산에는 약 2,000여 년이 넘는 아주 오래된 무덤부터 최근의 무덤에 이르기까지 많은 무덤이 있다. 유대인들은 심판의 주님이 감람산에 오실 것으로 믿어(슥 14:4) 자신이 죽으면 감람산에 묻히기를 원했다. 이러한 이유로 중세 유럽의 유대인들 중에서는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예루살렘으로 와서 임종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기드론 골짜기를 경계로 예루살렘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감람산에는 회교도들의 묘지가 있다. 훗날 메시아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의 동쪽 문을 통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회교도들이 이곳에 묘지를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메시아가 오시는 것에 대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