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가 알아야 할 60가지 메시지-월드미션뉴스

by wgma posted Jul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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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가 알아야 할 60가지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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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예배 속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르다처럼 분주하기만 할 뿐 마리아가 누린 평안함은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탐 크라우터, 게릭 구스타프슨, 켄트 헨리 등 7명의 활발한 찬양 사역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지치지 않고 음악적 성장을 이루는 법과 예배 인도자나 음악 목사 또는 찬양과 예배 사역에서 섬기는 사람들에게,

사역에 능력을 더하는 성경적이면서도 실제적인 영감을 전한다.

▣ 차 례
1. 생각과 태도를 다듬는 예배자
2.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예배자
3. 탁월함을 추구하는 예배자
4. 하나됨을 지키는 예배자 
5. 삶을 예배로 바꾸는 법을 배우는 예배자


1. 생각과 태도를 다듬는 예배자


♣끝까지 신실한 태도를 유지하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예수님은 마음속에 '인류 전체의 구원' 이라는 영원하고 최종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어떤 것도 예수님이 그 목적을 달성하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예수님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셨다.

사탄과 직접 맞닥뜨렸을 때도 목표를 수정하지 않으셨으며, 따르던 무리들이 자신을 버렸을 때도,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거부할 때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심지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도 단념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목표를 가지고 계셨고, 상황에 관계없이 그것을

추구하셨으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셨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확신에 차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것을 끝내기를 바라시며,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우리가 삶의 마지막 때에 하게 되기를 소망하신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사라져 버리는 폭죽이 되고 싶은가?

♣익숙함과 무뎌짐을 구별하라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나이다"(시 92:4~5)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지 60년이 지난 AD90년대 후반에 씌어졌다고 한다.

이 책은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분명히, 이 편지를 받는 이들의 부모 세대 중 몇 명은 예수님을

 직접 뵙고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들은 자기 만족에 빠져 있다.

바로 그런 점을 주님은 꾸짖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위로가 되는 사실을 찾았다. 안주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죄를 처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회개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함께 기도하자.

♣약할 때 강함 주심을 믿으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 2:6)

사실, 나는 내 자신이 커다란 진흙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리고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결점에 대해서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고, 나 혼자서 이루어낼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이 있음도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소망을 찾는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쓰시지는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분의 자비와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완전히 진흙 덩어리 같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을 쓰실 만큼 완벽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런 꿈은 접어두라.

하나님은 이미 완전히 순전하고 온전히 완벽한 유일한 그릇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그릇은 바로 예수님이다.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한 흠 투성이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 2:6).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는가? 아마도 간절히 죄를 용서받기 원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주님을 받아들였으니 주님을 받아들인 그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 안에서 살아가라.

♣섬김을 특권으로 삼으라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마 20:28) 오셨다고 따르는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볼 때, 다른 사람들이 손과 발로 예수님을 시중들 때에 예수님이 가만히 앉아 계시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예수님이 다른 세력가들처럼 누군가가 섬겨주기만을 기대하시는 분이라면 자신이 온 목적이 섬기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편하고 그 일에 열심인가,

아니면 섬기는 것이 특권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에 역사하셔야 하는가?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하라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분께만 온전히 위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신뢰가 오직 그분께만 있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재능이나 생각이나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아니라 가장 높으신 주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랄 때에 그분은 우리에게 능력 베푸실 방법을 찾으신다.

♣동기를 점검하라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삼하 20:25)

사독과 아비아달이라는 두 제사장이 있었다. 그들은 여러 면에서 비슷했지만,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랐다.

사독의 혈통은 하나님이 축복하셨지만, 아비아달의 혈통은 심판받았다. 그들은 거의 평생을 같이 사역했다.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 왕 시대에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길 임무를 맡을 제사장의 명단의 가장 위에 올랐던 두 사람이다. 그리고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서 언약궤를 예루살렘 밖으로 옮겨야만 했을 때,

다윗 왕은 이 두 사람에게 그 책임을 맡겼다.
그렇지만 다윗의 통치 말년에, 이 두 제사장은 누가 다윗의 뒤를 이을지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아비아달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왕상 1:5)고 말했던 아도니야의 편을 들었다.

그렇지만 사독은 아도니야의 과도한 야욕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다윗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

무엇이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후손들이 사독의 자손들이 받은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사독과 아비아달의 삶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있는 동기의 문제에 대해 환상적이고도 교훈적인 차이점을 보여준다.

그들의 행위 뒤에 숨어 있었던 동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있는 마음의 동기다.

아마도 사독은 다음과 같은 말을 매일 묵상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속에 있는 것을 충실히 행하자.

그리고 주님을 계속해서 섬기자". 모든 예배팀과 예배자, 우리 모두가 이런 사독의 열정을 갖기를 소원한다!

♣예배할 때 믿음을 사용하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어떤 식으로 예배하든, 개인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예배에 대한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믿음이다. 우리의 예배가 외적으로 어떻게 보이든 간에, 믿음이 없으면 그 예배는

의미가 없다. 성경의 단어들을 사용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예배에 대해 강조하는 교회를 다닌다 해도,

이것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증표는 아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 즉 신뢰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믿음은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과, 능력과, 지혜와 넉넉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 진리들을 단지 믿는 것뿐 아니라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것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손을 드는 행위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노래와 말로 고백한 것을 적극적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와 삶이 바뀌도록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라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8~10)

우리가 예배를 인도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알 수 있는가? 다음의 세 가지 면을 고려해 보자:

① 하나님께 언제나 순종하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쓰러질 때면(분명히 쓰러질 것이다), 재빨리 하나님께로 와서 회개하고 회복의

손길을 경험해야 한다. 사무엘이 어린아이 때 하나님께 드려진 것처럼 우리 또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② 우리는 걷기 전에 반드시 기어야 한다. 웅장한 시작을 하기 전에 작은 걸음을 먼저 걸어야 한다.

어쩌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배 첫 곡을 콘티와는 다르게 시작하는 것일 수 있다.

회중에게 모범이 되도록 손을 들고 예배하는 것과 같이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사무엘은 그가 훌륭한 선지자가 되기 이전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간단한 일을 하면서 사역을 시작했다.

③ 당신의 목사님이나 예배 팀원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 마라.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한 믿음의 발자국들을 다시 돌아보라.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 신학적으로 오류가 없는가에 민감해야 한다. 사무엘은 그의 스승인 엘리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과 일치하는 방법으로만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그분의 음성을 주의해서 듣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를 바라신다고 나는 믿는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순종하려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드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하신다.

그러므로 사무엘처럼 말하라고 권면하고 싶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2.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예배자


♣예배하는 이유를 잊지 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원하실까?

예수님이 우물가의 여인과 말씀하신 장면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찾으신다는, 즉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을 읽다가 한번쯤은 질문해 보았을 것이다. "도대체 왜?" 많은 성경 구절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가장 심오한 영역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바라시는 이유는 그분의 자녀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우리와의 관계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그분은 우리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신다.

창조하신 피조물과 관계하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특징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친교를 갈망하면서 말씀하신 구절을 보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우리와 관계를 갖는 것 말고, 하나님이 어떤 이유로 우리를 창조하셨겠는가?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은 본질적으로 나눔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을 기대하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계 4:8)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리스도는 놓친다. 경외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매일 보았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40년 동안이나 주셨다.

하나님의 손길 말고는 다른 무엇으로도 이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것들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더욱 계발해야 한다.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평범해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는 기대감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정말 거기에 계시는 것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어깨를 두드리시더라도 아마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열의 없는 태도에 안주하지 말자.

하나님께 당신을 사로잡아 달라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구하라. 기대감을 계발하라. 

♣거룩한 낭비를 드리라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마 26:7)

지금까지 들어본 예배 중에서 가장 전심으로 드린 능력 있는 예배의 예를 하나 들으라면 바로 이 장면일 것이다.

이 여인의 예배 행위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은 각자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은사와 사역들을 받았다.

그들은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로마서 12장 1절은 바로 그러한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요, 제사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26장에 나오는 여인이 비싼 향유를 주님께 드린 이야기는 지금도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이 행동이 왜 기릴 만한가?

그녀는 자신의 삶과 사랑의 제일 중심 되는 분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소유물을 드린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대답하신 것과 권고하신 것을 살펴보라. 예수님은 "그녀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예배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이 경우에는 여인의 드리는 행위,

그리고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후 온 방에 퍼진 향내가 바로 예배의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웠다!

자, 이제 당신에게 도전하고 싶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위대한 예배를 드리자. 우리 삶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주님께 내어드림으로 그분과 달콤한 교제를 나누자. 그렇게 할 때 예배를 드리는 성소로 계속해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식과 열정으로 예배하라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2)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기쁨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열정이 솟아나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가 되어야 한다.

찬양은 우리의 사랑으로 울려 퍼진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을 표현하려는 소망 안에서 우리의 음악은 이런

아름다운 관계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축복 받은 방법이 된다. 세상 음악가들도 감정을 벅차게 하는 사랑의 노래를

멋지게 불러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거짓된 인간의 사랑도 노래로 그렇게 잘 표현할 수 있다면,

가장 위대한 사랑이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더 타올라야 하겠는가?

시편 기자는 자신의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해서 쇠약해지고, 마음과 육체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찬양 가운데 있어야 할 열정이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싶어서 영혼이 쇠약해질 정도였다.

시편 103편 1절에서 다윗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속사람에게 열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예배 중에 깊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 마지막 순간이 언제였는가?

상황이 어떻든 간에 당신의 속사람에게 제한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했던 마지막 때가 언제였는가?

예배를 인도할 때는 최신 인기 찬양에만 의지해서 예배를 이끌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당신의 마음과 영과 뜻과 힘을 다해서 예배를 인도하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당신이 만들어내는 음악, 즉 예배를 특별하게 만드는 당신의 목소리나 연주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이 그런 은사와 능력들을 당신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이신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바리새인과 같은 태도 때문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마음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라.

 우리의 음악과 은사와 능력들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것들에 사로잡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사로잡혀라.


3. 탁월함을 추구하는 예배자


♣자신의 은사를 갈고닦으라
"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주장하여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요"(대상 15:22)

하나님은 모든 좋은 은사들을 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은사들을 알아가고 발전시키는 데 귀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사에 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좋은 은사를 주시는 분이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하나님께 보여드림으로써

감사를 올려드리자. 여든다섯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악기 연주법의 새로운 기술을 발견하고는

'유레카!'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훌륭한 제화공이 되자!

♣실패를 뛰어넘으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별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베토벤은 훌륭한 작곡자 중 한 사람이지만 지휘자로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렇지만 지휘자로서 실패했다는 사실이 베토벤이라는 한 사람을 실패자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실패의 두려움을 넘어서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갔고 세계는 그의 도전으로 더 풍성해졌다. 당신은 어떠한가?

과거의 실패 경험이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가?

하나님이 새롭게 지경을 넓히라고 말씀하시지만 실패 경험이 가져온 두려움 때문에 그냥 안전지대에 머물고 싶은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날개를 펴고 앞에 다가올 실패의 가능성을 직면하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신다.

창조자시며 삶에 힘을 주시는 분, 온 우주에서 가장 높은 권위로써 행성들이 그 궤도에 있을 수 있도록 지켜주시는

 바로 그분이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 때에 믿음의 큰 걸음을 뗄 수 있을 정도로 자유해진다.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실패가 사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또 그렇게 될 만큼 자유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부족함을 쓰신다. 지금 시작하라!

♣자신에게 맞는 예배를 훈련하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롬 12:6)

사람들은 각각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하나님이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은 우리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좋아하신다. 그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설명하듯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

게다가 하나님은 사람들이 가진 개성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배를 받으시길 원하신다.

화려하게 춤을 추는 사람부터 침상에서 경배하는 사람까지 모두를 원하시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개발해야 하며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물론 각자의 '스타일'로 예배를 드려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이지 어떤 특정한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본성적인 개성이 어떤 것인지 알고, 그것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특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예배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으로 개성을 이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어렵고 부자연스러울지라도, 그렇게 하도록 계속 훈련하라.

하나님은 분명히 은혜를 베푸실 것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면 할수록 예배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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