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5) 조롱당하신 왕- 이응주 목사

by wgma posted Jul 27, 2018 Views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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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5) 조롱당하신 왕

5) 조롱당하신 왕 (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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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 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27-31)

관정(Palace, Hall of Judgement-KJV)에서 예수님의 재판이 이루어졌던 총독의 관저(마 27:27; 요 18:28)로 헬라어 음대로 브라이도리온(praitorion)이라고 한다. 성전의 북서쪽에 있던 안토니아 요새나 헤롯 궁 등으로 추측된다.


군대(army, Legion)는 일정한 규율과 질서 아래 조직 편제된 군인의 집단을 말한다. 성경에는 군대라는 표현이 상징적으로 쓰인 경우도 있다. 거라사 지방에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실 때 그 귀신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군대’(레기온; legion)라고 하였다(막 5:9, 15; 눅 8:30). 계시록에는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탄 하늘의 군대들과 짐승과 땅의 임금의 군대들과의 전쟁이 기록되었다(계 19:14-19).


홍포(Scarlet robe)란 홍색 옷으로, 고대에 홍색 염료로 물들인 옷은 왕의 옷으로 신성함을 상징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홍포를 입게 했는데(마 27:28) 그들은 홍포를 입은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마 27:29)라고 한 뒤, 홍포를 벗기고 원래 옷을 입혀서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끌고 갔다(마 27:31). 그들은 자칭왕이라고 하셨던 예수님을 조롱하는 의미로 홍포를 입혔던 것이다(눅 23:2). 성경 다른 곳에서는 홍포를 자색 옷으로 기록했다(막 15:17; 요 19:2).


면류관(Crown)은 대제사장, 왕, 왕후, 대신,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 등이 썼던 관으로 영광, 권위, 위엄, 승리를 상징했다. 대제사장은 금패를 둘러 글씨를 새긴 관을 썼고(출 29:6; 레 8:9)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도 면류관을 씌워주었다(딤후 2:5; 고전 9:25). 예수님도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마 27:29).


또한 성경에서 면류관은 여러 가지를 비유할 때 쓰였다.

(1)‘공의는 면류관 같다’(욥 29:14),

(2)‘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잠 12:4),

(3)‘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잠 16:31),

(4)‘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잠 17:6),

(5)‘재물’(잠 27:24),

(6)‘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는다’(잠 14:18),

(7)에브라임의 교만함을 빗댄 ‘교만한 면류관’(사 28:1-3),

(8)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실 ‘의의 면류관’(딤후 4:8),

(9)시험을 참는 자에게 주실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10)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될 때 받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등이 그 예이다.

(11)또한 바울은 운동선수들이 면류관을 얻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듯 신앙 면에서 훈련할 것을 말했다(고전 9:25).


이렇게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수모를 당하실 예수님에 대해서 이사야서에 예언된 말씀이 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이사야의 이 예언의 글 보다 무엇을 더 설명하겠는가? 다만 우리가 유대인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유대교가 한 토막 구속사를 이끌어 온 구약교회라 한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을 겸손이 반성하고 최소한 우리 시대에는 유대교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계시진행에 민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릎(Knee)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상징적으로 쓰였다. 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받는다는 것은 자기의 자녀로 인정함을 의미했다(욥 3:12). 할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받는다는 말은 아이를 양자로 입양한다는 뜻이었고(창 50:23) 다른 여인에 의해 낳은 아이를 본부인이 무릎에 받는다는 것은 그 아이를 자기의 자녀로 받아들임을 나타내는 행위였다(창 30:3).



‘무릎을 꿇다’는 말은 성경에서 자주 쓰인 말로 하나님께 대한 간구, 기도하는 표현에 많이 쓰였다(왕상 8:54; 왕하 1:13; 대하 6:13; 스 9:5; 사 45:23; 단 10:10; 눅 22:41; 행 7:60). 또한 무릎을 꿇는 행위는 예배의 자세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마 8:2; 17:14; 막 1:40; 10:17; 14:35; 눅 5:12; 롬 11:4; 엡 3:15; 빌 2:10). 연약함을 표현할 때는 ‘무릎이 약하다’(욥 4:4; 시 109:24; 히 12:12)라고 말했고 ‘무릎이 서로 부딪힌다’는 말은 ‘두려움’을 뜻하는 것이었다(단 5:6; 나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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