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무엘 목사 (로이 교회 담임) 2023년 5월 14일 주일 “기도에 대한 교훈, 요나의 표적” (눅11장)

by kim posted May 12,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윤사무엘 목사 (로이 교회 담임) 

 2023년 5월 14일 주일

 “기도에 대한 교훈, 요나의 표적” (눅11장)


KakaoTalk_20230512_163018640.jpg

제목: 여호와는 나의 목자(19): “기도에 대한 교훈, 요나의 표적” (눅11장)
              “The Lesson of Prayer. The Miracle of Jonah” (Lk11)
본문: 누가복음 11:1-54
요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눅 11:30)
주제: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예표로 시대의 징표이다
교독문: 50번(빌4장), 예배의 부름: 시편 128:1-3
찬송: 246장(통 221장), 563장 (411장), 242장(통 233장)
일자: 2023년 5월 14일 주일 (부활절 후 여섯번째 주일), 성찬식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 교회 담임)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11호
      (지하철: 인천1호선 국제업무역, 출구 5번, 좌측 7분 거리 빌딩)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30]
 
오늘은 미국에서는 어머니의 날 Mother’s Day로 지킵니다. 매년 5월 둘째 주일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효도하는 날입니다. 1908년 West Virginia주에 사는 Anna Jarvis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여 카네이션을 단 것이 기원이 되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부터 어머니의 날로 지키다가, 1975년부터 어버이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1930년에 발표된 양주동의 시에 이흥렬의 곡  〈어머니 마음>에서
1절: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2절: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3절: 사람의 마음 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일년에 한번 부르는 노래이지만 어버이를 생각하며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나마 부모님께서 살아계시면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서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1장을 강해하겠습니다. 기도에 대한 교훈, 요나의 표적을 가르쳐 주십니다.


1. 1-13절, 기도를 가르쳐주심 The Lord's Prayer (눅 11:1-13)
(1)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니 제자 중 하나가 부탁하기를 “주님,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2)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님의 나라가 오게 하옵시며,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뤄지게 하옵소서. (3) 날마다 일용할 빵을 주옵시고 (4) 저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저희 죄도 용서하여 주옵시고 저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저희들을 구하여 주옵소서” 하라(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요하여 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12) 달걀을 달라하면 전갈(scorpio)을 주겠느냐? (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the Holy Spirit)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1절]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자 제자 중 하나가 말하기를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시면서 우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매사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친히 기도로 본을 보이십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조용한 곳에 나가 기도하셨고(막 1:35) 늦은 밤에도 기도하셨으며(마 14:23) 때때로 밤새도록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눅 6:12).
2절. 예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고 하시며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기도 내용의 모범이 됩니다. 그 기도는 전체적으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하고, 그 다음에 우리 자신과 이웃의 것을 구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먼저 요긴한 것들을 기도하고 그 다음에 부차적인 것들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건강이나 물질 문제나 자녀 문제 등을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것들에 대한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시겠지만, 그것들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들이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현대역에서는 “아버지여”라는 되어 있지만 개혁자들의 성경인 전통본문에는 마태 6:9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세계를 초월하여 계십니다. 또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들을 낳고 보호하고 의식주의 문제를 책임지듯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창조자와 보호자와 공급자이십니다. 우리의 천부(天父)께서는 영적인 것들뿐 아니라, 의식주에 관한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마 6:32).
“주님[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나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도리어 그 이름에 욕을 돌렸고 지금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지고, 또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최종적 공의의 심판이 내려짐으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주님[당신]]나라가 오게 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범죄한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은 하나님의 통치권의 회복입니다. 소요리문답은 이것을 ‘은혜의 나라’와 ‘영광의 나라’로 표현합니다. 은혜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 현재적 측면을 말합니다. 그것은 전도를 통해 혼들의 거듭남으로 시작됩니다. 성도는 이미 은혜의 나라에 들어와 있습니다. 신약교회는 비록 불완전한 모습으로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은 복음 전파의 일, 그것을 통한 영과 혼 구원의 일, 또 그로 말미암아 참된 교회들이 설립되는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또한 영광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의 측면을 말합니다. 그것은 몸의 부활과 만유의 회복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나라이며 의와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의와 진리와 순수한 복음과 바른 교회를 위해 때때로 고난을 당하지만, 장차 그 나라에서 기쁨과 위로와 보상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듯이, 땅 위에 있는 성도들도 그렇게 하게 하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죄로부터 구원 얻는 것이며(엡 2:8), 거기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구원의 과거적 단계는 죄로 죽었던 영과 혼들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로 인해 거듭나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重生)과 사죄(赦罪)와 칭의(稱義)와 양자(養子)입니다. 이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구원의 현재적 단계는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실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거룩의 열매를 맺고 흠과 점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한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롬 6:22). 이것이 성화(聖化)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과 온전함입니다(살전 4:3; 딤후 3:16-17). 이것은 개인적으로 우리 자신이 죄를 떠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이지만, 교회적으로는 교회가 배교(背敎)와 타협하지 않고 그 순수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보수적이며 성경적인 교회들은 이러한 순수함을 추구하며 소유하는 교회들입니다.
구원의 미래적 단계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영광스러운 몸이 되고 영광의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롬 8:29-30; 계 21-22장).
우리편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롬 3:22; 엡 2:8). 또 구원받은 성도들은 성경의 모든 교훈들을 순종함으로써 점점 더 거룩하여집니다. 또 교회들도 모든 인본적, 세속적 생각과 방법을 버리고 오직 성경의 모든 교훈들을 전심으로 믿고 따를 때 순결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혼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자신을 힘써 드려야 합니다.
3-4절. 주기도의 네 번째 내용은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책을 읽고 묵상함으로 영적 활기를 얻지만, 주님께서는 특히 육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줄 압니다. 사람은 영혼육으로 구성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육의 양식도 주실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또 이 기도 내용은 일용할 양식 외에 우리의 모든 육신적, 물질적, 가정적, 사회적 일들도 포함된다고 보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다섯 번째 내용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고 영적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죄는 여전히 하나님과의 교제의 방해물입니다. 범죄한 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꺼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 십자가 위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을 때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는 다 용서되었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가 범하는 실수와 죄는 여전히 죄이며 그것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죄사함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것은 몸에 침투한 병균을 죽이거나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여전히 회개에 대해 말합니다(고후 7:10; 계 2:5; 3:19).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용서하는 것이 필요함을 교훈한합니다.
주기도의 여섯 번째 내용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것입니다. 개정판이나 현대역에서는 빠져 있지만 전통본문에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큰 문제는 육신적, 경제적 문제가 아니고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는 죄사함도 중요하지만, 죄에 떨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송영(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ever. Amen)이 없습니다.
5-8절.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후 주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교훈을 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빵 세 덩이를 내게 빌려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함께 나와 침대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끈질김(아나이데이아 ἀναίδεια)을 인하여 일어나 그 필요한대로 주리라.”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끈질김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을 교훈하십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일지라도 밤중에 무엇을 빌려달라는 것은 무례한 일이지만, 그 사람이 친구의 청을 들어준 것은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끈질김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몇 번 아뢰다가 중단하지 말고 끈질기게 조르듯이 강청의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시며 또 그분에게는 밤중같이 불편하여 우리의 강청을 들어주시기 힘든 때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에게 기도하면 항상 들어주실 것이며, 특히 강청의 기도를 드리면 잘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청의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강청의 기도를 통해 자신의 교만과 자존심을 버리고 자기를 부정하게 되고 겸손해집니다. 또 우리는 강청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굳세게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유익을 주시려고 우리의 기도를 금방 들어주지 않으시고 우리가 그에게 끈질김의 기도를 올리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시시때때로 간절한 강청의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9-10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기도의 응답은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얻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반복적이고 점점 강해지는 뜻을 가진 이 말씀은 끈질긴 기도를 묘사합니다. 또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이라는 말씀은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뒤따른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원문에는 10절 초두에 ‘왜냐하면’(가르 γὰρ)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 응답에 대한 근거로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구하는 이마다, 찾는 이가, 두드리는 이에게’라는 표현은 기도하는 당사자가 응답을 받는 것이며 그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기도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의 표현이며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을 굳게 믿는 자는 힘있게 기도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에 비례합니다.
11-13절.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해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한번 더 사람의 예를 사용하십니다. 전통본문에는 “생선을 달라 하면”이라는 말 앞에 “빵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빵을 달라 하면 돌을 줄 자가 없고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자가 없고 계란을 달라 하면 전갈을 줄 자가 없습니다. 악한 사람도 그러하다면, 하물며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얼마나 더 좋은 것들을 주시겠습니까?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은 성령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들 중에 가장 귀한 복임을 증거합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이끄시는 거룩한 영이시며 우리에게 진리의 지식과 믿음, 또 생명의 활기와 힘, 또 위로와 기쁨을 주십니다. 예수님 믿는 신약성도는 이미 성령님을 받았고(롬 8:9), 이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늘 구하며 느끼며 그분의 위로와 힘을 받으며 살아가면 됩니다.


2.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심 Jesus and Beelzebul(눅 11:14-36)


(14) 예수님께서 한 벙어리 마귀를 쫓아 내시니 마귀가 나가니 벙어리가 말하는지라 사람들이 이상히 여겼으나(15) 그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마귀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낸다 하고(16) 또 더러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17)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18)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이길 때에는 그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23)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 더러운 마귀가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25) 와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26) 이에 가서 그보다 더 악한 마귀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27)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28)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29)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분이 여기 있느니라.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14절. 예수님께서 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니 마귀가 나가며 벙어리가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겼습니다. 마귀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 곧 악한 영입니다. 마귀가 사람에게 들어가 그를 벙어리 되게 하였습니다. 모든 질병이 다 그렇지는 않다고 보지만, 어떤 질병들은 정신적 요인으로 발생합니다. 그런 경우 그 병은 자신의 영의 결함 때문이든지, 마귀의 영의 활동 때문일 것입니다. 마귀는 어떤 사람의 뇌신경에 나쁜 영향을 줌으로 그로 하여금 언어 기능이 마비된 벙어리가 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벙어리 마귀를 내쫓아 주심으로 그 벙어리는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심리 치료 방법이나 반복적 언어 훈련으로 된 것이 아니고 마귀를 쫓아내심으로 된 것입니다. 이런 유의 병의 치료는 병든 영의 치료나 악한 마귀를 내쫓음으로 가능합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마귀를 내쫓는 일은 인간편에서 기도와 금식의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마 17:21, 전통사본). 예수님께서 마귀를 내쫓으셨다는 사실은 그분께서 천사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분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와 물질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이십니다.
15-16절. 그런데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가 마귀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낸다 말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바알세불’은 ‘더러운 것[우상들]의 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행위가 모든 사람에게 다 믿음을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기적은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기적이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근거와 계기가 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기적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벙어리 마귀를 내어쫓은 예수님의 기적이 놀라웠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그를 비난하기를, 그가 마귀들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예슈아)께서 악한 벙어리 마귀를 내어쫓으셨는데도, 그분을 믿지 못하고 그분을 ‘마귀들의 왕’이라고 비난하다니 인간은 참으로 무지하고 악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분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하늘로서 오는 표적’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확인할 만한 기적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믿을 만한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고 또 이제도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표적을 보이셨음에 불구하고, 그들은 또 다른 신기한 일들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근거를 구한 것이라기보다 단순히 호기심을 위한 요청이라고 보여집니다. 참으로 믿기를 원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미 충분한 기적들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자 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은 우리의 믿음을 위해 충분합니다.
17-19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장이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단지 그들의 말에 대해 대답지 않으시고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십니다. 그것은 자신이 마귀들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그런 일을 행할 수 없다는 답변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진다’는 일반적 진리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분쟁한다’는 원어는 ‘나뉜다’는 뜻입니다. 한 가정이든지 한 나라든지 분쟁하여 둘로 나뉘어 있다면 그 가정이나 그 나라는 견고하고 평안하게 세워질 수 없고 무너지고 황폐하여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일반적 진리를 들어, 사탄이 스스로 나뉜다면 어떻게 그 나라가 서겠는가?라고 반문하십니다.
또 주님께서는, 만일 내가 마귀들의 왕을 힘입어 마귀 내쫓는다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그렇게 하는가라고 반문하십니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 자들이 더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던 어떤 사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내어쫓는 일을 행하였습니다(눅 9:49). 유대인들은 그런 자들에 대해 예수님께 했던 비난과 같은 비난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 아들들에 대해서는 관대했으나 예수님께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그 아들들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22절.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이길 때에는 그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의 행위가 마귀들의 왕을 힘입어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한 것임을 증거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하는 어떤 이들의 잘못된 말들로 인해 가질 수 있는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특히 자신이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을 나타낸다고 증거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심히 타락하여 사탄과 악령들의 지배를 받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두워진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탄과 악령들의 세력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루어집니다. 사탄과 악령들은 힘이 있는 천사들입니다. 그들이 무장을 하고 자기 집과 같은 사회를 지킬 때에는 자기들의 소유물들이 다 그의 손 안에 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강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들을 이기실 때 그들의 무장을 빼앗으시고 그들의 소유물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23-26절.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흩어지게 하는 자니라. 더러운 마귀가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말하기를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마귀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비난하는 저 악한 자들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그들은 그분을 반대하고 그분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실 백성들을 흩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정말 위하는 자들이라면, 그들은 그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뜻은 예수님의 생각과 뜻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와 함께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들은 확실히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입니다. 또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을 모으지 않는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구원하여 모으시려는 사람들을 흐트러뜨리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람들을 구원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구원 운동의 방해자요 교회를 흩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만일 그분을 참으로 영접지 않는다면 그들의 마지막 형편은 더 나빠질 것입니다. 사탄과 악령들의 지배를 받았던 이스라엘 사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탄과 악령들이 일시적으로 내쫓김을 받았지만, 만일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영접하고 순종치 않으면 사탄과 악령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들어와 활동하게 되어 그 마지막 형편은 더 나빠질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그 은혜를 체험하고도 그분을 진심으로 영접지 않고 순종치 않는 자들의 마지막 형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보다 더 나빠질 것입니다.
27절,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라고 말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과의 혈육적 관계를 자랑하며 뽐냅니다.
28절. 주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혈육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많은 말들과 글들이 있지만 그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들과 다릅니다. 그것은 곧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얻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는 예수님의 혈육관계보다 더 복이 넘칩니다.
29-30절.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예수님 당시의 세상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지만 진심으로 믿으려는 동기에서가 아니고 단지 호기심에서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많은 표적들과 기적들을 행하셨으나, 사람들은 그분을 알지 못하고 또 다른 표적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오직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시는데,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지막 가장 큰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삼일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신 후에 제3일에 부활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지막 표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최종적으로 확증할 것입니다.
31-32절.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이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분이 여기 있느니라.” 주님께서는 자신이 솔로몬보다 더 크신 자이며 또 요나보다 더 크신 자임을 증거하십니다. 그것은 인간적 교만이나 자랑의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리요 사실 그대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크시고 요나보다 더 크신 자이십니다. 그러나 솔로몬 때에 남방 여왕즉 시바(Sheba, 왕상 10:1-13)는 솔로몬의 말을 듣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왔었고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지만, 이 악한 세대는 솔로몬과 요나보다 더 크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지 않고 그 말씀을 들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으니 얼마나 악한 것인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 때에 남방의 시바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마지막 심판날에 그들이 다 부활하여 예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회개하기를 거절한 이 세대의 사람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33-36절.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밀실(secret place)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주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내면적 지식과 사상과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마음의 등불과 같습니다.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복음과 구원과 영생과 천국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바른 지식입니다.

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심 Woes to the Pharisees and Lawyers(눅 11:37-54)
(37)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39) 주님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40)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41)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42)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대답하기를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46) 말씀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대언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48) 이와 같이 그즐은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49)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대언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중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하리라’ 하였으니(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대언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가지 일로 대들고(54)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
37-38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는데, 잡수시기 전에 우선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음식을 들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당시의 장로들의 관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당시의 관습을 따르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인간의 관습에 불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가르쳐 주신 것들만 권위 있게 여겨야 하고 성경에 가르치지 않은 관습들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39절. 주님께서는,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것들을 교훈하십니다. ‘탐욕’이라는 원어(하르파게 ἁρπαγῆς)는 ‘약탈’ 혹은 ‘탐욕’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거룩한 삶을 말하면서 내면적 성결을 중시하지 않고 외형적 성결만 강조하였습니다. 잔과 대접의 겉을 깨끗이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마음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것이 문제이었습니다. 외적 불결은 몸에만 해롭지만, 마음의 불결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며 자기의 영육을 멸망시킵니다. 참된 경건은 내면적 성결로 나타납니다. 마음이 바르고 깨끗하고 착한 것이 중요합니다.
40-41절.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오직 그분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주님께서는 사람이 내면적 성결 없이 외적 성결만 중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영육의 존재입니다. 남에게 보이는 사람의 외형적 부분은 육체요, 남에게 보이지 않는 내면적 부분은 영 혹은 혼입니다. 사람의 겉이 아무리 아름답고 단정해 보여도 그 속, 즉 그의 영과 마음이 깨끗하고 바르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악하고 무가치한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의 내면적 불결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해결책으로 “오직 그분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안에 있는 것’이라는 원어(타 에논타 τὰ ἐνόντα)는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고 번역합니다(KJV). 바리새인들은 마음 속에 물질에 대한 탐욕이 가득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탐욕의 죄를 회개하고 탐욕을 버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해야 합니다. 구제는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물론 규모 없이 살거나 절제 없이 살아서 가난해진 자들 또는 근면하지 않고 게을러서 가난해진 자들은 자신을 반성하고 규모 있고 절제 있게 살고 근면하게 살기를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강조하여 교훈하신 바입니다(신 15:7-11). 그러므로 구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의와 선을 행하는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중요한 표시가 됩니다. 옛날 멸망을 당하였던 소돔 성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부요했으나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줄 몰랐고 그것이 그들이 멸망한 중요한 죄악의 내용들 중 하나이었습니다(겔 16:49). 사람은 탐심을 버려야 남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42-43절.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바리새인들은 율법대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을 실천하였습니다. 십일조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서 성경에 가르치신 헌금의 주요 원리입니다(레 27:30-33). 그것은 물질의 복이 약속된 규례입니다(말 3:8-12). 십일조는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물질의 소득이 다 하나님의 복임을 인정하며 감사하며 고백하는 표시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십일조 생활을 실천한 것은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십일조에 더하여 내면적 도덕성, 즉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교훈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원어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로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다 가리킬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는 “율법의 더 중한 바 의(義)와 인(仁, 자비)과 신(信, 신실함)”이라고 표현합니다. 종교적 규례와 내면적 도덕성은 둘 다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규례는 중시했으나 내면적 덕을 소홀히 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명예심과 교만을 나타냅니다. 이것도 역시 큰 죄이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겸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덕입니다. 미가 6:8은, “사람아, 주님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십니다(마 23:11-12). 우리는 교만과 명예심을 버려야 합니다.
44절.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전통본문에는 ‘너희여’라는 말 대신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평토장한 무덤’은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하지만, 그 속에는 부패되고 더러운 죄성으로 가득한 위선적 인격을 표현한 말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겉보기에 경건하고 단정했으나 속에 탐욕과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 위선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내면적 성결과 단장입니다. 디모데전서 2:9-10, “이와 같이, 여인들도 단정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우리는 마음을 단장해야 합니다.
45-46절.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라고 말하자,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율법사’는 ‘서기관’과 같은 말로서 율법 학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로만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지기 어려운 짐들을 사람들에게 지우고 자기들은 한 손가락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전혀 행위의 모범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롭고 선한 삶을 원하십니다.
47-48절.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대언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그들이 선지자[대언자]들의 무덤을 가꾸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죽이려 한 것은 선지자[대언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던 그들의 선조들의 삶과 동일합니다. 그것은 큰 위선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는 단지 전시대의 선지자[대언자]들을 존경하고 그들을 기념하는 것보다 그들의 사상과 인격과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49-51절. 구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많은 종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뜰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대하 24:20-21)의 피까지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의인과 선지자[대언자]들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세대가 참된 의인이시요 선지자[대언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핍박하고 마침내 죽일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죄악은 인류 역사와 구약 역사의 모든 죄악들의 절정일 것입니다.
52절.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고 하십니다. 율법사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지식의 열쇠를 오용하였습니다. 그들의 지식은 행위를 동반하지 않은 지식이었습니다. 행함 없는 지식은 위선자들을 만들어 내며 종교를 부패시킬 뿐입니다. 또 그런 위선자들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길을 오히려 방해합니다.
53-54절. 그들에게 이것들을 말씀하실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 가지 일로 비난하기 위해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켰습니다. ‘목을 지킨다’는 원어(에네드류온테스 ἐνεδρεύοντες)는 ‘숨어 기다린다, 올무에 걸리게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겉사람뿐 아니라 속사람을 깨끗이 관리합시다.우리는 외모만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미지 말고, 탐욕, 악독, 명예심, 교만을 버리고 마음속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자가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특히 탐욕을 버리고 가난한 이웃에게 구제하는 자가 되자. 그러려면 우리는 근검절약하며 절제하며 자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된 규레로 주신 십일조 생활도 실천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덕인 의와 사랑도 실천해야 합니다. 참된 경건은 환난 중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약 1:27). 영과 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17, 26).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오늘 어머니 날을 주셔서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점검하고, 저희들 자녀들에게 효자, 효녀되게 하옵소서. 5계명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게 하시며, 이런 부모님을 잘 순종하고 효도하게 하옵소서. 오늘 주신 누가복음 11장 말씀대로 주님의 기도를 순종하며 믿음으로 끝까지 간구하여 응답받는 기도의 생활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이 시대의 요나처럼 세계선교를 하게 하시며 각나라 각민족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과 누가복음 11장의 주기도문을 비교해 보자
2. 기도의 응답에 대해 생선, 달걀, 성령님으로 비유한 말씀을 나누자
3. 바알세불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낸다는 소문에 대해 주님의 가르치심은?
4. 이 시대 요나의 표적이 주는 교훈에 대하 나누자
5.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책망받은 내용은?
6. 십일조와 내면적 경건을 함께 실행하는 방법을 논의해 보자
7.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천국 들어가는 자를 방해하는 죄에 대해 말해보자
------------------------------------------------------------
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가정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성신강림절을 준비하며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5월 15일 월 찬 204장(통 379장) 요일 3 의로움의 실천, 사랑의 실천
    16일 화 찬 205장(통 236장) 요일 4 영의 식별, 사랑과 믿음
    17일 수 찬 207장(통 243장) 요일 5 사랑의 뿌리인 믿음
    18일 목 찬 209장(통 247장) 요이 1 선택을 받은 여성과 자녀들
    19일 금 찬 210장(통 245장) 요삼 1 사랑하는 자여, 범사, 강건
    20일 토 찬 211장(통 346장) 유 1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보호받음
--------------------------------------------------------
◉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
겟세마네 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2023년도 봄학기 개강(2023년 2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종강 2023년 5월 29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2023년 5월 15일 월 수업 일정표(스승의 날)
   1교시 10:00-11:40 조직신학(윤사무엘), 요한계시록(박호용)
   점심과 체조, 친교 시간 (11:40-1:00)
   2교시 (1:00-2:30) 심볼리즘(류재이), 중독회복(김도형/이미숙)
   3교시 (2:50-4:20) 목회신학(이성환), 성경학(오선화), 졸업논문(윤사무엘)
   4교시 (4:30-5:20) 원어강독(윤사무엘)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연락처: 010-3288-2878, 010-9367-7605, 010- YunSamuel

9113-1127
◉로이교회 후원계좌: 농협 302 0280 1002 11


5e6dea321595528f49ffc8b654c7c8bd.png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