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주목사의 칼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신령한 나침반

by wgma posted Nov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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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주목사의 칼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신령한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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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들이 길따라 가고 있다. 육지에 길들이 다양하다. 문화가 발달하기 전에 조상들은 맨발로 혹은 가벼운 짚신을 신고 흙을 밟으면서 살아간 길이였다.

시대가 변했다. 문화의 발달로 조상들이 걸어가던 자연의 길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아스팔트 위로 사람들이 땅을 밟지 않고 기계화 된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길로 변했다.

지구촌에 나라마다 길 따라가는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정해서 가는 길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나침반이다. 나침반으로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가리키는데로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다.
육지만 아니고 바다에도 공중에도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든지 자동차나 배나 
비행기를 이용해서 가고자하는 목적지를 따라가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침반이다.
 
15세기에 이르러 나침반은 정식 항해 도구가 되었고,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나침반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자 항해 나침반은 새로운 지리적 발견을 위해 대서양을 횡단하는 초기 항해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콜럼버스가 처음 대서양 횡단을 할 때도 여러 개의 나침반을 가지고 갔다고 한다. 
 
1820년 덴마크의 물리학자 외르스테드는 전자기학의 탄생을 알리는 유명한 실험을 하게 되었다. 전기가 흐르는 선 가까이 가면 자기장 때문에 나침반 바늘이 흔들린다는 사실 발견하게 되었다. 프랑스 물리학자 앙페르와 아라고는 처음으로 전자석을 발명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자석 바늘이 축에 고정되지 않아 마찰을 일으 킬 염려가 없는 액체 나침반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기 액체 나침반이 사라진 지 600년만에 다시 액체 나침반을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아니라 천국으로 안내하는 나침반임을 믿고 말씀 나침반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성도들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오직 한 곳으로만 안내하는 천국행 나침반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않고는 누구든지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요 14:6)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나침반은 동서남북 방향따라가게 하는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산속에서 방향을 알지 못할 때도 나침반이 있으면 가야 할 길을 향하도록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지상에는 나침반이 있고 밤 하늘에는 별들이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방박사들은 별따라 아기 예수 탄생한 곳까지 가서 경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천국가는 나침반은 오직 성경말씀에서 가르치시는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시고 세상 죄를 지고가신 예수만 믿고 말씀따라가는 것이 영생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핵가족시대의 문화와 형제우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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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촌 인구가 73억3천3백만이라고 한다.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있지만 핵가족으로 산업혁명에 실패한 나라가운데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노동력이 부족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동원해야 했고 또한 독일에도 노동력이 부족해서 간호사 혹은 광부들을 타국에서 채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와 가까운 일본에도 핵가족으로 인한 결과로 노동력이 부족해서 해외로부터 근로자들을 모집해서 기업들이 운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핵가족문화로 윤리도덕성이 결여되고 어른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도 없어지고 스승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 가볍게 여기는 모습들로 변질되고 말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핵가족문화로 인해서  지금은 형제우애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슬픈 일들이 가장 가까운 형제들이 등을 돌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질이라는 돈 괴물에 물려서 돈독 때문에 부모 형제도 보이지 않는 정신 이상자가 되어버린 사상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라고 진단해 보고 싶다. 과연 형제우애가 더 중요한가? 돈 뭉치가 중요한가? 선택은 개인의 의식구조에 따라서 다른 현상으로 갈라질 것이다.

돈이 때로는 인격까지 상실시키는 무서운 독이 있다.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싸움이 시작되기도 한다. 핵가족문화가 만들어낸 작품이 형제 사이까지 갈라놓는 그림을 그리도록 만들어 버렸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욕심일까?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에 있는가? 부모형제 곁을 떠나고 고국산천을 뒤로하고 타국에서 이방인이되어 멸시와 천대와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도 형제우애라는 말이 마음그릇에서 떠나지 않고 담겨져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남은 시간이 짧다. 그리 멀지 않은 앞에 남은 길목에서 마지막까지 고이 간직하고 싶은 것은 핵가족문화로 밀려들어오는 악한 사상때문에 형제우애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돈, 돈독에 병든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임을 전하고 싶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다.   
갑자기 외부에서 밀려온 물질이라는 파도 때문에 받은 상처가 빠른 시간에 아물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주님 용서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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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감사치 아니하며, 무정하며 ''(딤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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