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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39

 

땅에서 올라온 짐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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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의 세계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책임지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되라고 유혹했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것을 선언한다.

여기에 요한계시록 13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인간의 삼위일체를 선언한다. 인간 그 자체와 인간이 능력과 힘과 보좌를 부여한 조직화된 제도(바다 짐승)와 거짓 선지자(땅 짐승).

땅 짐승의 모습과 말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 요한계시록은 바다 짐승은 그냥 짐승으로, 땅 짐승은 거짓 선지자로 기록하고 있다. 거짓 선지자인 땅 짐승은 어린 양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린 양의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상징된다. 바다 짐승의 모습은 무서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땅 짐승은 어린 양의 모습이다. 마태복음 7:15은 이에 대해 이렇게 해석해 주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어린 양으로 그려지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사야 53:7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이다. 이러한 모습은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의 음성으로 들려준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로서 땅 짐승은 어린 양 자체가 아니라 <양의 두 뿔>을 강조한다. 거짓 삼위일체는 모두 뿔을 가지고 있다. 용이나 바다 짐승은 열 뿔을 가지고 있고, 땅 짐승은 두 뿔이다. 그래서 용이나 바다 짐승의 모습은 접근하기에는 괴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땅 짐승의 모습은 전혀 괴물 같지가 않다. 양의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누구나 접근하기가 쉽다. 그런데 뿔 자체는 어린 양의 뿔인데 두 뿔은 용과 연관지어 이야기 하고 있다. 뿔은 권력이나 힘을 상징한다. 모습은 어린 양인데 실제로는 용과 같이 힘을 가지고 바다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하며 위협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다.

 

(2) 바다 짐승이 나라를 다스리는 국가라는 제도라면, 땅 짐승은 바다 짐승이 하는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합법화 시켜주는 입의 역할을 한다. 2라는 수는 히브리 글자의 두 번째 <베트>의 숫자다. <베트><>이다. “벧엘은 베트()과 엘(하나님)의 결합어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다. 집은 기둥이 바쳐 주어야 한다. 그래서 2란 수는 집을 받쳐 주는 두 기둥이다. 여기에서 2란 수는 <협력>의 수이다. 이 두 기둥은 어느 한쪽이 기울어져 있으면 집을 지탱할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거짓 선지자로서 땅 짐승의 말은 아주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이해할만 한 말을 한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하와는 사탄의 소리를 아주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을 따라 갔다.

거짓 선지자의 미혹은 6장 첫 번째 인에서 등장한다. 여기에서 거짓 선지자의 미혹은 흰 말을 타고 있다. 그렇게 미혹의 소리가 듣는 자에게 있어서는 살리는 소리로 들린다. 그 소리를 듣지 않으면 잘못될 것이란 생각을 가지게끔 거짓 선지자의 미혹은 달콤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주 위협적이다.

 

땅 짐승의 일

[13: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 플라톤의 <국가>나 공자의 <논어> 그리고 노자의 <도덕경>조차도 국가 정치에 관한 책이다. 플라톤은 철인이 그리고 공자는 인()의 사람이 다스릴 때 나라가 평온하다는 것이고 노자는 왕이 백성을 위해 무엇을 굳이 할려고 하지 않아도 되면 그 나라는 좋은 나라다. 당연히 성경을 정치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한 나라의 수반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책임지는 정치가 하나님의 정치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어찌했든 땅에서 사는 동안은 누구나 국가의 영향력 아래 살아야 한다. 윤리를 이야기 할 때도 국가를 빼고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과 드러난 규법은 다를 수 있다. 아무리 포스트 모던니즘 시대에 산다 하더라도 그래서 규범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도 국가가 정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한국에서 사는 남자라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를 가야 한다. 동성애의 문제를 개인적으로나 종교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국가가 정한 법에 의해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개인이 되었든지 종교적 신념이 되었든지 그 신념이 국가의 법이 되도록 투쟁도 하는 것이다. 법 없이도 산다는 말은 법을 어기지 않고 산다는 말이다.

 

(2) 그런데 국가론을 이야기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정치제제라 하더라도 주권이 왕에게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정치가가 오직 자신의 잇속만 챙긴다 하더라도 드러난 형식명분은 백성을 위하고 민중을 위하고 국민을 위해서이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거짓 선지자가 국가에 예속되어 국가의 입이 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결코 거짓 선지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진화론을 이야기 하는 자가 국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를 좋아서 시를 쓰고 있지 국가를 말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서 국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체를 이야기한다. 인간주의 그리고 인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청교도 신앙을 기반으로 미국이 세워졌다면서 그 안을 들어다 보면 인간주의 선언이 더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미국이다. 하나님을 내세우지만 인간이 먼저다. 심지어 세계교회협의회(W.C.C.)조차 인간주의가 그 시작이다. 인간주의가 인권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인간이 우선이라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인간주의의 총합체가 바로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래서 직접적은 아니래도 어떤 일에 종사하든지 간접적으로 우리는 국가를 위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동성애는 어떠한가가 아니라 인권이란 이름으로 국가는 마침내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을 내린 국가의 논리를 사람들은 지지하고 그것이 사람들 앞에서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 이제는 자신의 신앙적 신념으로 인해 동성애자 결혼케익을 팔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고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리고 국가의 결정에 따라 교회 역시 인간주의적 해석을 내림으로 성경을 왜곡한다. 이제 합법화된 권위를 가지고 국가를 배경으로 신앙적 신념을 가지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자들은 역차별의 법적 제제를 받을 수 있다.

 

(3) 종교를 국교로 삼는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신의 이름으로하면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 없다. 문제는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국민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 국가는 자유를 위해 투쟁해 왔고 마침내 국민 개개인이 주인이 되는 나라 민주주주의 만들어냈다. 그러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독재국가일수록 백성을 위하여를 외친다. 요한계시록은 노골적으로 말한다. 국가주의란 곧 인간주의다. 현 체제가 싫어서 다른 정치체제로 국가를 세운다 하더라도 구호는 같다. 백성을 위하고 국민을 위해서다. 지금 요한계시록은 국가의 이름으로 인간 우선주의를 심판하고 있다.

 

땅 짐승의 표적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땅 짐승은 거짓으로 사람을 미혹케 하는 자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두 증인이 나온다. 두 증인의 복음증거 때 일어나는 것을 이적의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에 대비하여 거짓 선지자의 이적을 이야기 하고 있다. 더 정확히 번역하면 표적이 되겠다. 표적이란 기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적의 의미를 말한다. 예수님이 가나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였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사도 요한은 이 기적을 성경에 기록하였는가이다. 그것은 변화다. 이 변화는 요한복음 전체 흐름을 이어주는 단어가 된다. 이렇게 이곳에서는 요한복음에 등장한 표적이란 단어를 썼다. 실제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는 이적을 행하였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적을 짐승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12절에서는 국가의 이름으로 국가의 합법적인 권위를 거짓 선지자가 행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거짓 선지자가 11장의 두 증인과 비교하여 기록된 것이라면 이 이적은 말의 이적일 수 있다. 거짓 선지자가 전하는 말이 듣는 자들에게는 하늘에서 내린 불로 여겨질 수 있다. 마치 오순절 때 교회에 성령이 임하자 불의 혀같은 것을 본 것처럼 거짓 선지자의 말이 듣는 자들에게 먹힌 것이다. 그것도 강렬하게. 국가의 형상을 만들라고 한다. 여기에서 <우상>이라는 말은 <형상>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국가를 상징할 수 있는 형상이다. 한국은 태극기가 그 형상이 될 수도 있겠다. 미국은 성조기다. 거기에다가 독수리도 미국의 상징적 형상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 형상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마치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이미 말한 대로 국가의 드러난 형식은 인간주의와 인권 우선주의다. 곧 인간에 대한 경배다. 로마 당시에는 황제 개인이, 민주주주의 국가에는 그야말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40

 

땅에서 올라온 짐승 (2)

(요한계시록 13:15-18)

 

용과 바다짐승 그리고 땅짐승은 땅의 삼위일체를 이루어 참된 창조주 삼위일체 하나님께 끊임없이 도전한다. 용은 사탄 또는 마귀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를 사탄 또는 마귀라고 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되라고 유혹했다. 곧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용을 인간으로 대치하여 생각하면 이야기가 쉬워진다.

인간 각자가 다 주인으로 살다가 보니 문제가 야기된다. 서로 주인이 되고자 다툰다. 여기에 질서를 위해 인간을 위한 제도화된 조직을 만든다. 바로 바다짐승이다. 절대 무너뜨릴 수 없는 조직으로서의 제도가 국가다. 국가는 인간을 위한 조직으로 세워진다. 실제적인 내용은 어떠할지라도 인간을 위한 조직이다. 단 누가 인간인가라는 질문은 던져야 한다. 민주정치 이전의 국가에서는 최고의 권력자 및 지배계급만이 인간으로서 취급받았다. 하층계급은 천하게 취급당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는 마치 노예는 개나 고양이같이 여겨졌던 것과 같다. 그래서 하층계급이 자신들도 인간이라면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게 해달라면서 민주주의 국가가 형성된다. 국가는 언제나 인간을 등에 태우면서 등장한다. 어디까지가 인간으로 취급되는가의 규정은 다르지만.

이제 바다짐승을 경배하라고 말로 설파하는 땅짐승이 등장한다. 거짓 선지자다. 그런데 국가주의는 인간주의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히틀러정권을 찬양할 때도 이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구호를 외친다는 사실이다. 결국 거짓 선지자는 인간을 우상화 시킨다. 창세기 11장 바벨탑사건에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이름을 위한다면서 바벨탑을 쌓는 명분이 주어진다.

 

국가의 형상

[13: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3: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1) 15절 전반부를 제대로 번역하면 이렇다. “(땅짐승. 거짓 선지자)가 그 짐승(바다짐승. 국가)의 형상이 말하도록 그 짐승의 형상에게 영을 주도록 허락되어곧 거짓 선지자가 국가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형상이 말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라고 설파하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짐승의 형상을 경배하도록 강요되고 있다. 그 형상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 이 표를 <666>라고 말한다.

 

(2) 그리고 그 권력의 행사는 <매매>로 나타난다. <>이다. 666이라는 표를 가지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 된다.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된다. 국가의 정치제체는 국민 개개인이 주권자가 되는 민주주의로 발전해 왔다면,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로 발전해 왔다. 자본주의는 <>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형성한다. 드러난 형식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인권을 가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에 의한 차별화된 신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 곧 <>이 권력을 행사한다. 미국에서의 실용주의란 돈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를 말한다. 돈이 되면 움직인다.

 

(3) 국가라는 명칭은 권력을 떠 올리게 한다. 국가의 형상은 표면적으로 <666>이다. 그리고 <666>의 실제적인 가치는 <>으로 매겨진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선거는 돈이 없이는 치룰 수 없다. 한 나라의 수반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게 된다. 돈이 아니고는 돌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문제는 교회 역시 돈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현실이다.

 

666

 

(1) 7이 하나님의 수라면 6은 인간의 수다. 777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수라면, 666은 거짓 삼위일체 인간의 수다. 곧 용과 바다짐승 그리고 땅짐승의 수다. 곧 총제적인 인간의 수다. 물론 인간이 개별적으로 인내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긴 하지만 총체적으로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에게 도전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올수록 더욱 그리한다.

 

(2) 하나님께 도전하는 총제적인 인간은 이미 바벨탑 사건에서 드러났다. 세상의 모든 학문과 종교와 과학 그리고 의학의 진보를 통하여 인간의 위대함이 경배되고 인간이 곧 신이라는 사상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바벨이란 말은 <신의 문>이다. 인간이 신의 문을 열고 닫고 하겠다는 것이다. 곧 인간이 신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인간의 기쁨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다. 더 이상 인간의 삶에 하나님은 없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두려움에 종교를 만든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의 발전은 인간은 인간의 위대함에 눈을 뜬다. 인간은 진화론을 통해 하나님이 계신다는 자체를 허구로 만들었다. 하나님 없이도 자연은 그 자체로 진보하고 위대한 인간까지 진화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언제까지 연장시킬지 모른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복제해 내는 데까지 나아간다. 신의 영역에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진화의 최고 작품인 인간은 또한 어디까지 진화해 갈지 모른다고 장담한다. 그렇게 인간은 신이 되어간다고 믿는다.

 

(3) 요한계시록은 666을 짐승의 수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사람의 수라고 한다. 곧 짐승과 사람이 같아지는 수이다. 그런데 이는 그 한 짐승으로서 한 사람이다. 그래서 666은 인간으로 이루어진 총체적인 사람의 수라고 한 것이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사 바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흙으로 빚고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니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하나님의 생기가 없으면 인간은 짐승과 같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의미는 인간만이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는 인간은 짐승과 같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즉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영적인 죽음이다. 짐승은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교제와 상관없다. 짐승은 결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없다. 오직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 없는 인간주의는 인권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하나님의 말씀조차 무력화 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조차 인권을 위한 인간의 말로 변질된다.

 

(4) 666은 컴퓨터나 바 코드 그리고 베리칩이 아니다. 공산주의나 천주교 교황 또는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성경이 말씀한 그대로 하나님이 없는 총체적인 인간 그 자체가 666이다. 인간 그 자체와 인간이 만든 제도 그리고 인간을 내세운 인간의 거짓된 가르침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서 하나님께 도전하는 총체적인 인간의 수가 666이다. 그런데 이러한 총제적인 인간의 수 666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국가라는 것이다. 왜냐면 국가는 인간의 전 모든 삶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666은 국가의 형상이 된다.

 

(5) 666은 이란 표를 이마나 오른 손에 낙인을 찍게 한다. 이마에 표를 찍는 것은 자신은 이런 자입니다고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면 오른 손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행동한다는 의미다. 인권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에덴동산을 만드셨다. 신명기 10:13에서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법을 주셨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킬 때 행복이 오며 인간이 창조된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일 때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드러난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총제적인 666의 도전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어떤 것도 인간위에 존재하는 것은 없다. 만일 신이 있다면 그 신 역시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인간만이 위대하다. 인간만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반전이 이루어진다. 인간의 가치를 부르짖지만 인간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선언하지만, 인간의 가치가 인권이 자본에 의해 매겨진다는 현실이다. 그리고 인간의 권리가 국가에 달려있다는 현실이다. 국가가 인정해 주는 권리만이 권리로서 행사되는 것이고, 그 권리의 가치는 돈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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