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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목사의 인물구속사 32

 

세례 요한, 구약의 결론

   

말라기 선지자의 외침을 끝으로 하나님의 계시는 약 400년을 침묵한다. 그 사이 이스라엘은 헬라 왕국을 지나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 로마는 가장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로부터 황제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광야에서 외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이 등장한다. 당시 대제사장을 맡고 있었던 스가랴의 아내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든 여인이었다. 그런데 임신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아이가 세례 요한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시작되는 신약시대를 연결하는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였다. 그렇게 세례 요한은 구약을 마무리 짓는다.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선지자이기도 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4 복음서들은 공통적으로 세례 요한의 외침으로부터 시작한다.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출생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등장하는 30세까지 침묵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죄사함의 세례를 요단강에서 베풀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 요한과 구별하여 세례 요한이라 부른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6개월 전부터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하나님의 소리였다. 세례 요한은 이미 이사야가 40:3에서 예언된 자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마태복음 3:3)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관계는 구약에서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의 길을 준비한 모세, 솔로몬이 성전을 짓도록 준비한 다윗과의 관계와 닮아있다. 모세와 다윗은 여호수아와 솔로몬의 길을 준비한 자들이었다.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러나 정작 가나안을 정복한 자는 여호수아였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을 견고히 세운 목적은 안전한 땅에서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고자 함이었다. 이스라엘 왕국의 목적은 성전이었다. 그래서 성전짓기를 다윗은 원했으나 성전은 다윗 아들 솔로몬이 짓게 된다. 모세와 다윗은 이렇게 세례 요한의 모형이 되고 여호수아와 솔로몬의 예수님의 모형이 된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자이다. 그리고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가정교사라고 갈라디아서 3:24은 선언한다. 곧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구약의 결론이 세례 요한으로 나타난다. 세례 요한은 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지를 광야의 소리로 구약의 입장에서 외친다.

 

죄 사함의 세례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죄 사함의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는 세례 요한의 등장으로 표면화 되었다. 구약에는 세례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세례에 비견할만한 것들이 나오긴 한다. 세례는 물로 한다. 물은 무엇인가를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구약에서 물로서 정결의식을 행하는 것들이 나온다. 사람이 부정케 되었다고 할 때 물로 씻어 정결케 한다. 그리고 성전에는 물두멍이 있어서 제사장들이 번제단에서 짐승의 피흘림으로 죄 사함의 의식을 행한 후 물두멍에서 정결의식을 행한다. 또한 성전의 성소에 들어가려면 물두멍에서 정결의식을 행한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결함으로 거룩해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부정한 것을 씻어내는 정결의식에는 물이 동반된다.

죄는 사망을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준비하셨다. 그것은 죄인이 걸머져야 할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켜 짐승을 사람을 대신하여 죽게 함으로 죄가 사해지는 은혜의 길을 주셨다. 이러한 일은 성전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죄인이 죄 사함을 위해서 자신의 죄를 걸머지고 죽어야 할 짐승과 함께 번제단을 향하는 길은 바로 회개의 길이다.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위한 회개의 수단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성전에서 죄 사함을 위해 짐승을 대신하여 죽게 하는 것은 생략하고 인간을 바로 물두멍으로 인도한 것이다. 세례 요한의 회개를 위한 세례 의식은 죄 사함을 위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어떻게 죄 사함을 위해 짐승을 죽이지 않고도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 죄 사함이 주어지는가? 그래서인지 세례 요한에게 죄 사함을 위한 세례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제외되고 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 예수님이 바로 번제단에서 인간의 죄를 위해 죽어야 할 어린 양으로 소개되어 진다. 예수님으로 인해 번제단에서의 희생제물은 드려진다. 이러한 것을 근거로 세례 요한은 정결케 하는 물 세례을 한다. 그것은 죄 사함의 상징이었다. 이것으로 세례 요한은 구약을 결론짓는다. 죄 사함이 없는 회개란 없다.

여기에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는다. 이것은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 충격으로 다가 왔다.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번제단에서 드려진 짐승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했다. 세상 죄를 지고 갈 어린양으로서의 예수님은 죄가 없어야 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을 위한 것이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 베푸는 것을 거절했으나 예수님은 허락하라고 한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죄 사함을 위해 세례 요한의 세례를 넘어 연합의 의미를 가진다. 죄인된 인간과의 연합이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인간의 죄를 걸머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신약의 세례 의미는 단순히 죄 사함의 회개를 의미하는 세례 요한의 물 세례를 넘어서서 그리스도와 연합이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에 대해 로마서 6:3-5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구약은 죄 사함을 위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성전을 향하여 구약의 사람들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신약의 사람들은 이미 이루어진 죄 사함을 믿고 성전에 가는 것이기에 발걸음이 가볍다. 그렇게 세례 요한은 구약의 결론으로 인간에게는 죄 사함이 필요함을 광야에서 외치고 있었다.

 

마지막 날의 심판을 외침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다. 이러한 외침은 홍수로 심판할 당시의 노아의 심정이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오시면 이제 모든 것은 끝난다는 외침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셨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입장에서 이제 옛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노아시대의 하나님의 심판과 같은 것이었다. 노아시대에 물로 모든 생명체가 죽게 되는 심판을 받았다. 오직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의 가족 8명만이 살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오심은 그 이상이었다. 구약은 메시야의 오심은 세상 끝날이라고 믿었다. 세례 요한은 외침은 이러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태복음 3:10) 세례 요한은 구약의 결론으로서 이렇게 광야에서 외쳤다. 그리고 회개의 물세례를 주었다. 메시야되신 예수님이 마침내 오셨다. 세상은 끝이 나야 했다. 당시 갈릴리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의 잘못을 지적했던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메시야는 왔다.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끝이 나지 않고 있었다. 세례 요한은 사람을 보내 예수님에게 메시야임이 맞는가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세례 요한은 구약의 결론으로 등장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다.

예수님의 오심은 구약에서 말한대로 마지막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임은 맞다. 성경은 예수님의 오심으로부터 말세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그 말세의 의미는 심판의 기준이 정해졌다는 의미에서의 말세다. 예수님만이 천국과 지옥의 기준이 되신다. 구약에서는 비밀이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분명히 성막제도를 통해 인간이 구원받는 길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사람들은 율법에 매달렸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저주로 끝을 맺는다. 단 하나의 희망은 엘리야의 등장이다. 그가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자가 될 것임을 예언했다. 그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결론이 율법적 입장에서 사람들은 심판이 주어질 것이라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외쳤다. 모든 것은 율법을 기준으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어김으로 오는 죄 사함의 길을 선언하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될 것이다. 아멘!

 

김성철목사의 인물구속사 33

 

요셉의 의

  

세례 요한이 구약의 결론으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법적 아버지 요셉은 신약을 알리는 신호로 등장한다. 마태복음 1:19-20 단 두 절은 성경의 구원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마리아가 결혼 전에 임신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한 요셉에게 있어서는 충격이었다. 요셉의 입장에서 마리아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범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요셉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셉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거기에 하나님의 개입이 등장한다. 마침내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자신과 관계없이 태어난 예수님을 자신의 자녀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양자로 받아들인다. 요셉은 혈통적인 아버지가 아닌 법적인 아버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요셉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성경 인물구속사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계되는 구약의 인물로 이어지는 구속사는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 요셉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요셉은 구속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다.

 

법적으로 양자로 받아들여지다

 

요셉은 형통에 따른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요셉은 혈통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은 기꺼이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기로 한다. 요셉의 친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양자로 받아들어진 것이다. 곧 요셉은 법적인 아버지가 된다.

이러한 요셉과 예수님의 관계는 하나님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사이의 관계와 닮아 있다. 예수님의 탄생조차도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12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권세무엇을 행동할 수 있는 권세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권세는 사법적으로 보장한 권세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하는 권세를 법적으로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로마서 8:15에서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니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당당한 자녀로서의 권세를 말씀하고 있다. 다시 정리하여 말하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양자로 법적으로 편입됨을 말한다.

성경은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고 선언함으로 독생자 예수님과 구별하고 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다. 성경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고 했을 때 이는 아들이 아버지 그 자신과 동일함을 말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렇게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맞는데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로 편입된 것이다. 곧 법적인 관계인 것이다.

예수님은 요셉의 법적인 아들이 된다. 이러한 면에서 예수님은 요셉과 결코 동일시되지 않는다. 최초의 인간의 타락이후 죄인으로 선언된 인간과 예수님은 전혀 동일시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스스로도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언하신다. 그렇게 함으로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한다. 이렇게 법적으로 양자됨과 혈통적 아들은 차이가 난다. 하나님은 우리를 법적인 아들 곧 양자됨을 선언한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시되는 반면, 우리는 자녀로서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고 당당히 기도하지만 여전히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유지한다.

의로운 사람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묘사된다. 성경에서 라는 말이 때론 정의’ ‘공의라는 의미도 있지만 구원사의 흐름에서 볼 때 바른 관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신의’ ‘의리라는 의미에 가깝다. 요셉과 미리아의 관계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어쩌면 결혼 날짜도 받은 상황에서 머잖아 결혼하기로 하였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동안 쌓아왔던 관계가 있다. 당시 결혼을 약속한 자가 있음에도 다른 자와 관계를 가지고 결국 임신에까지 이르렀다면 공적으로 돌로 쳐 죽일 수 있도록 당시 법이 정하고 있다. 만일 요셉과 관계없는 아이를 임신했다고 하면 이는 단지 요셉의 문제만이 아니다. 요셉이 마리아는 자신과 관계없는 아이를 임신했다고 말한 순간 마리아는 공적으로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여기에 요셉의 갈등이 있다. 마리아와의 관계를 공적으로 벌을 주는 관계로 끝을 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마리아의 관계로 마리아를 공적으로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리아도 살리면서 헤어지고자 한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요셉의 고민이었다. 이러한 요셉의 고민은 마리아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단지 율법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관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요셉은 의로운 자라고 선언하고 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요셉이 가졌던 고민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문제를 율법을 지키면서도 관계적으로 접근하고자 하신 것이다. 죄인을 어떻게 용서해서 다시 인간과의 관계를 가질 것인가? 이것이 성경의 줄거리다. 어떻게 타락한 인간이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율법적으로 접근하시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으로 접근하신다. 곧 사랑으로 접근하신다. 성경의 요절이라 할 수 있는 요한복음 3:16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에서는 이미 성막제도를 통해 하나님의 문제 해결 곧 하나님의 인간 구속사의 비밀을 알려주셨다. 인간의 죄를 위해 짐승이 대신하여 죽는 것이다. 곧 대신하여 죄를 속해 주는 또는 죄를 용서해 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의 비밀이 예수님이 오시면서 밝혀지게 된다. 예수님이 인류의 대표자가 되어 인간의 죄를 지고 대신 죽어주는 곧 대속자가 되어 십자가에서 죽는 길이다. 그렇게 인간은 죄 사함을 받고 그 결과 다시 하나님을 만나 관계를 가지게 되는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를 로마서 1:17에서는 이렇게 선언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령으로 태어나다

 

요셉이 마리아와의 관계를 공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비밀리 해결하고자 할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려준다. 요셉은 이에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요셉의 법적인 아들이 된다.

요한복음 3장에서 거듭남 곧 다시 태어남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고린도후서 5:17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말씀을 읽는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다시 태어난 자이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더 이상 죄에 끌러 다니는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던 그 원래의 관계로 회복된 것이다.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이다. 서서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신분 자체가 바뀐 것이다. 거듭난다는 말에는 다시’ ‘철저하게의 의미와 더불어 위로부터의 의미도 가진다. 인간 스스로 노력하여 바뀐 것이 아니다. 인간의 행위가 인정되어 구원받은 자가 된 것이 아니다.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누리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게 되는 영생을 얻게 됨은 위로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이 대속자가 되어 죽으신 것이다. 이를 믿음으로 우리는 거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요한복음 3장은 이러한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다.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결토 거듭남은 없다. 이 말은 결단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말씀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다. 요한복음 5:39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밝힌다.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한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나지 않고는 결코 거듭날 수 없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셉 이야기는 예수님의 대속적 구원을 가장 간단하게 보여주는 신약을 알리는 이야기다. 법적인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관계적 곧 의로 풀어가는 문제 해결, 그리고 성령으로 나심. 이는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인간 구속과 관계된다.

 

 

김성철목사의 하나님나라 비유(마태복음 13) 2

 

하나님의 나라

 

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다. 마태복음 13장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은 하나님나라로 시작해서 하나님나라로 끝을 맺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은 온전한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이다.

 

성경의 대전제 : 창조주 하나님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한다. 창세기 1:1의 이 문구는 성경 전체를 이끌어 가는 성경의 대전제다.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다. 곧 창조주 하나님이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시편 24:1-2) 기독교의 믿음은 바로 창세기 1:1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창세기 1:1은 결코 증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모든 성경 이야기는 창조주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다. 인간의 타락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한 사건이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도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3:18)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이렇게 답변한다. “(당신)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 여기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믿음이 고백되자 예수님은 비로소 자신이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구약성경 에스더아가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성경을 읽을 때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전제하고 읽는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다. 곧 하나님의 왕국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다스려지는 나라다. 어렵게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나라다. 주권이란 주인됨의 권리라는 말인데, 주인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다. 이를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표현하고 있다. 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곧 하나님이 뜻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다스리는 형상을 따라 땅을 다스리는 자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 곧 다스림 아래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도록 맡겼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다스리는 자여야 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래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다스림) 아래에서 땅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주권(다스림)을 거절할 경우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것이다. 이를 영적 죽음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울타리를 벗어난 경우에는 하나님과 관계 또는 교제가 끊어진다. 이런 면에서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특별히 인간과는 특별한 관계를 가지신다.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과 교제를 가지신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한다면, 생명나무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거절한 순간 하나님과 교제 곧 생명이 끊어진 것이다. 죽음이다. 성경에서 죽음이란 소멸이 아니라 분리 또는 단절을 의미한다.

여호와란 이름에 대해서 출애굽기 3:13에서 스스로 있는 자(나는 나다. I AM THAT I AM)”라고 하나님이 스스로 밝히셨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은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신다. 스스로 계신 분이다. 이렇게 밝히신 근저에는 그럼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인간은 의존적인 존재라는 이야기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요한복음 1:3에서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래서 전도서에서는 해 아래서하나님이 없이는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없이는(without God)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여호와)이시지만 인간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쉽게 말해 보자. 인간은 하나님의 다스림(주권) 아래 있을 때 땅을 제대로 다스리게 된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주권을 거절하고 스스로 주인으로 살아가겠노라고 선언한 인간은 그 순간부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행복(에덴)은 사라지고 수고로운 삶이 인생의 길이 되었다. 인간은 땅을 다스리며 살아가는데서 실패해 왔다. 오히려 땅에 끌려왔다. 물질을 다스리는데 실패해 왔고, 인간관계는 고통을 가져오는 최대의 조건이 되었고, 악은 인간의 본성이 되었다. 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곧 삶의 현장에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은 크게 두 가지로 되어 있다. 전반부는 하나님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이고 후반부는 바로 다스리며 살게 하옵소서이다. 하나님나라의 회복에 관한 기도이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세계, 하나님나라의 회복이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13장에서의 하나님나라

 

마태복음 13장은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긴장이 있다. 예수님이 오셨다. 하나님나라가 땅에 임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 복음을 세상에 전하신다. 하나님나라의 시작이다. 그 시작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 심기어질 것이다. 여기에는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막는 가라지도 있다. 그래서 긴장은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까지 계속된다. 이러한 긴장에 대해서 성경은 투쟁의 역사라고 이야기 한다. 창세기 3:15은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 곧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은 하나님 중심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하고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사는 사람들과의 투쟁이다. 하나님나라와 인간나라의 투쟁이다. 이를 그리고 있는 성경이 요한계시록이다. 하나님나라가 땅에 온전히 이루어지기까지 저항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확장되어 나갈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아는 자들의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나라는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나라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예수님 안에서 먼저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이 주어진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구원이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생명이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왕(주인)을 만났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니 온전한 하나님나라가 삶의 형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게 할 것인가? 이게 쉽지 않다. 그래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렇게 함으로 이제까지 내가 보기에 좋게 살아왔던 삶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으로 바꾸어 간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삶이다.

마태복음 13장 하나님나라 비유는 이렇게 결론을 낸다.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인 자는 살 것이요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나라는 하늘과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회복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나라를 우리는 선포해야 할 사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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