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2) 5병2어(五餠二魚)의 기적

by wgma posted Dec 28, 2015 Views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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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2) 52(五餠二魚)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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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2(五餠二魚)의 기적(14:13-21),

 

참으로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이다. 이 기적 사건은 예수님의 여러 가지 기적 사건 중에서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베푼 기적 사건이 아니고 군중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행해진 사건이었다.

 

52어 사건으로 인해서 예수는 더 외로워지고 마침내는 십자가를 지게 되실 때 이 떡을 먹었던 군중들이 결정적 역할을 한 듯 생각되어진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예수와 군중 사이가 갈등으로 이어진 장면이 연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배경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6:14). 여기서 선지자란 말은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야란 말이다. 그리고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6:15). 만일 사람들이 원하는 임금으로 한 나라의 정지가로 세워졌다면 자기들은 배고픈 문제 즉 빵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들 곁을 떠나셨을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군중들이 원하는 것처럼 세속나라인 유대나라의 임금이 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부터 군중들과 예수님 사이에 의견이 달라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다음날에 들어나고 말았다.

 

이튿날(6:22) 무리가,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를 만나서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요 떡을 먹고 배부를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자니라.(6:26-27)

 

그들이 던진 질문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6:28)라고 할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9).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목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6:30-31)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6:32-33)

 

그들이,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6:34) 여기서 군중들은 광야에서 조상들이 만나를 먹었던 것처럼 52어로 배불리 먹었던 것처럼 일하지 아니하여도 항상 놀고도 먹을 수 있는 떡을 먹여 주소서 한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예수님은 이 군중들이 원하는 떡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지 않고 육신을 위한 떡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의 떡을 말씀한 것이다. 여기서 군중은 육신의 떡을, 예수님은 영혼을 위한 영생의 떡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세속족인 것이냐, 신령한 것이냐, 하는 문제와 같은 것으로 생각해보면서 목적이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지난 2천년 동안 교회역사의 흐름과 함께 계속 갈등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종교적 분쟁과 싸움을 해온 일이다. 지금도 똑같이 믿는 자들의 세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의 문제인 것이다. 즉 유대군중들의 욕구와 예수님의 요구의 내용은 계속해서 수평선에 있으면서 뚜렷한 접촉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불신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신령한 내면세계에서 충실하려는 사람들과의 싸움인 동시에 갈들을 불씨가 되고 있다.

 

이것은 지난 2천년동안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가치를 두려는 사람들과 가시적 현실에 가치를 두는 쪽과 투쟁해 온 것이다. 지금까지 가시적 현실세계에 가치를 두는 쪽이 승리를 해왔다. 상대적으로 그 반대의 사람들은 비참하게 패배를 당해야 했고 그 사람들은 항상 소수였고, 외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7:13-14)고 했다.

 

군중들은 결국 예수를 떠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사람들 편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축배의 잔을 들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 의해서 패배자로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들어갔다. 그러나 3일 만에 부활하셨고(2:32)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승리의 축배의 잔을 들었던 사람들은 부끄럽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신 것“(2:33)이다.

1)예수께서 들으시고 따로 빈들에(14:13-14)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14:13-14)

 

*빈들(Desert)은 넓은 들이나 넓은 곳을 의미하는 말로, 욥기에서 짐승들이 어릴 때에는 어미의 보호 아래에서 지내지만 자라서 자신의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되면 어미를 떠나서 돌아오지 않게 됨을 말할 때, 짐승들이 자라는 장소로 언급되었다(39:4).

 

신약에서는 에레모스’(eremos)라는 단어가 광야(3:1; 4:1)나 빈들(14:13; 1:80)로 번역되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죽음 소식을 들으시고 빈들로 가셨으며(14:13), 이곳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여자와 아이를 뺀 5,000명의 사람들을 먹이셨다(14:15-21)

 

또한 누가는 세례 요한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고 적었다(1:80). 세례 요한은 이곳에서 지내던 중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사역을 시작하였다(3:2). 어떤 학자들은 세례 요한이 거했던 빈 들이 유대 남쪽, 사해의 서편에 있던 광야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병인(Sick people)은 환자, 병을 앓는 사람을 말한다. 이사야는 앗수르 제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순식간에 소멸되는 모습을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인이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10:18)고 했다. 앗수르의 멸망상을 병든 사람의 육체에 비유한 것이었다. 한편 예수님은 병인들 모두에게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손을 얹거나(4:40; 6:5) 기름을 바르는(6:13) 등 여러 방법으로 고쳐 주셨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도 성전으로 올라가던 중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치는 기적을 베풀었다(3:1-8).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이 옥에서 목 베임을 당했다는 소식도 들으셨고 헤롯이 자기를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는 소식도 들으셨을 것이다. 그는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셔서 따로 빈들에 가셨다. 무리들은 그가 어디 계신다는 말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그를 좇아갔다.

 

예수께서 나오셔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구약교회는 부패되어 있었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이 근심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주께서는 그 중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의 신적 능력으로 그들의 병들을 고쳐주신 것이다.

 

2)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14:15-18)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나아와 말했다.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저녁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배가 끝나자마자 바삐 집으로 돌아가는 오늘날 교인들과 달랐다. 제자들도 그들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하지 않았고, 단지 식사시간이니까 마을에 들어가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말하였다.

 

그 방황하며 갈망하는 무리를 위해 주께서는 자리를 피하거나 그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지 않으셨다. 그는 오히려 그들의 육신적 양식에 관심을 가지셨다. 그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의 반응은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그것은 한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것이었다(6:8-9)고 요한복음에는 기록하고 있다. 그 떡 다섯 개는 그 무리들에게 말할 필요조차 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그 보잘것없는 것을 가지고 그 많은 무리들을 배부르게 먹이실 수 있었다.

 

3)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19-21)

주께서는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 ‘축사 한다는 원어(율로게오 eujlogevw)감사한 다는 뜻이다. 주께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음식물을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그는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다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 주님의 떡 기적은 겨우 배고픔을 면하는 정도가 아니고 무리에게 배부름을 주는 것이었다. 떡을 먹은 사람들은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이나 되었다. 즉 장년 남자만 약 5천명이었다. 원문에는 ’(호세이 wJsei;)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과 같이, 그 당시에도 많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거기에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리는 2만 명이 족히 넘었을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숫자이다. 그 많은 무리들이 그날 저녁에 놀라운 떡의 기적의 현장에 주인공들이 되었다. 그들은 이 일에 산 증인들이 된 것이었다.

 

*잔디(Grass)는 포아풀(벼과의 풀을 통틀어 말함) 과의 다년 생으로 들이나 길가에 나는 풀이다(6:10). 잔디는 팔레스타인에서 우기가 막 끝나는 2월 중순경부터 빈들에 돋아나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빈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 잔디 위에 수많은 군중들을 앉게 하셨다(14:19; 6:39).

 

*조각(Artistic design)이란 나무나 돌, 쇠붙이 따위를 재료로 새기거나 빚어내는 일을 말한다. 모세는 브살렐, 오홀리압 등의 일꾼들을 불러서 성막에서 사용되는 여러 기구들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조각을 하고 수놓고, 짜는 여러 가지 일을 담당했다(35:35). 한편 모세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열두 지파와 함께 언약을 확증했는데, 이때 장색의 손으로 조각했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므로 이를 만들어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27:15).

 

*바구니(Basket)는 종려나무나 버들가지, 갈대 등을 엮어서 만든 그릇이다. 개역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단어가 바구니 또는 광주리로 번역되었는데(14:20; 6:43; 8:19; 9:17; 6:13), 손잡이나 뚜껑이 있고 없는 등으로 다양한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

 

개역성경에 바구니로 번역된 헬라어 코피노스’(kophinos)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다는 본문에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언급된 코피노스는 버들가지로 만든 바구니로 끈을 달아 어깨에 메고 다니던 것이었다. 따라서 열두 개의 바구니는 제자들이 각각 가지고 다니던 것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14:20; 8:19; 6:13).

 

유대인들, 왜 바구니를 메고 다녔나?

보통 유대인들은 여행하는 동안 이방인에게서 음식을 사서 먹지 않기 위해 자신의 식량을 바구니에 지니고 다녔다.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1) 첫 번째,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는 현장이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 이상, (여자들과 아이들 포함 2만 명으로 추측) 이상을 먹인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우리는 어떻게 한 알의 씨가 수천 혹은 수만 개의 곡식을 만들어 내는지 그 이치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신비한 법칙에 의해 그렇게 된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19:26) 하나님은 전능하신 신이시다(42:2). 예수께서 떡 기적을 행하신 것은 그가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육신의 몸을 입고 사셨지만, 그는 또한 임마누엘(하나님)이셨다. 우리는 떡 기적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하지 말자.

 

2) 두 번째, 떡 기적은 하나님께서 영육의 양식을 풍성히 공급해주실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세계의 생물들을 기르시고 먹이시는 섭리자이시다(104:25-29). 그는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6:11).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6:31-33).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인 성경의 풍성한 교훈과 육신의 양식인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거처할 곳을 주실 것임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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