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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강해 11장(2) 애절한 예수님의 초청장

 

애절한 왕(예수님)의 초청장

(마태 11:20-30)

이응주 목사 성경강해12083611_953176444743224_1471348507_n.jpg

 

우리나라에 100만 인구가 넘는 도시는 몇 개나 될까? 2014년 10월 23일자에서 연합뉴스가 발표한 통계에서 고양시까지 10개라고 한다. 그런데 중국은 거의 200개라는 것이다. 100만 명이 넘으면 거대도시라고 하는데, 중국서 가장 인구 많은 도시는 베이징, 상하이가 아닌 충징으로 2천8백만명, 참고로 서울은 1천만 명이라고 한다. 점점 인구증가로 인한 대도시 형성으로 바꾸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영적인 문제다. 가까운 일본은 어떤가? 1,000만 명이상이 살고 있는 동경을 중심으로 위성도시인 요꼬하마를 비롯하여 100만 도시가 10개가량이 있다. 지구촌에 100만 이상 도시들이 많은 것으로 생각해 본다. 문제는 예수 믿는 신앙도 없고 죄에 대한 회개도 없는 일본은 지금 각가지 재난과 더불어 우상으로 둘러싸인 일본 선교가 시급한 때를 맞이하고 있다. 일본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회개 없이 망해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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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를 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니느웨로 가서 삼일 길을 다니면서 외친 결과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과 짐승까지 삼일금식하고 회개하여 구원받게 되었다, 니느웨에는 12만여 명이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라고 했다. 그들이 하나님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 지라고 했다(욘 3:5) 왕으로부터 짐승까지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네가 아끼는 것이라고 하셨다. 지구촌 모든 도시에 요나와 같이 외치는 자들이 일어나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개혁 운동이 무엇인가? 건물로 모으는 것이 아니다. 어디 살든 주님께로 향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회개보다 기복신앙에 관심이 많아서 마음들이 타락하고 말았다. 이럴 때 너도 나도 사는 비결은 불신앙을 회개하는 방법밖에 없다.

 

1) 회개 없는 도시들 (20-24)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 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 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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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권능(power)이란 권력과 능력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대해 주로 쓰였는데,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결정하시는 것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다(시 115:3; 마 19:26; 눅 1:37).  

하나님은 권능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출 13:16; 민 33:3). 권능은 원래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시 62:1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했다(시 21:13). 에스겔은 주의 권능을 경험한 가운데 예루살렘의 심판을 예언했으며(겔 3:14; 3:22), 여러 선지자들 역시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했다(사 33:13; 렘 10:6; 나 1:3).

 

그리고 회개(Repentance)를 외쳤다. 회개는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있던 사람이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메타노에오’(metanoeo)이며 ‘생각을 고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메시아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고치고 그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마 3:2). 이것에 대한 예는 오순절 때의 유대인의 회개(행 2:36-37),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의 회개(행 9:1-9) 등이 좋은 모본이 된다.

 

회개는 단순한 죄에 대한 슬픔이나 고백만은 아니다. 그것은 회개의 원인이나 결과일 수는 있으나 회개 자체는 아니며 회개는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마음의 결정을 포함한다. 회개는 성경에서 100회 이상 언급된 중요한 주제이다. 회개는 세례 요한의 주제였고(마 3:1-2)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회개를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막 6:12). 오순절 이후 제자들은 회개를 선포했고(행 2;38) 하나님께서도 회개를 명령하셨다(행 17:30).

 

구약에서는 율법과 희생 제물의 법대로 죄를 고백하고 제물을 바쳤다. 그러나 복음적인 회개란 죄로부터 돌아와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행 20:21). 이것은 단순히 악에서부터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기초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행 11:18). 다시 말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말하는 것이다(고후 7:10).

 

그러나 참된 회개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특권이다(딤후 2:25). 사람들이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때 성령은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시며 그 결과로 회개에 대한 강한 소원이 개인에게 나타나게 된다. 요나는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회개하기를 설교했고 그 결과 니느웨 백성들은 그 메시지를 믿었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왔다(욘 3:3-10). 또한 하나님께서는 가끔 우리들을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책망하시거나 채찍으로 치시기도 하신다(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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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책망(Blame)도 하셨는데, 일반적으로 잘못을 꾸짖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고라신과 벳새다 지방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자 그들을 책망하셨으며(마 11:20), 초대교회 중에서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계 2:4)와 이세벨을 용납한 두아디라 교회가 책망 받았다(계 2:20). 한편 바울은 교회의 감독과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딤전 3:2; 딛 1:6).

 

1-2) 고라신(Korazin)이란 가버나움 북쪽으로 약 3.2km 떨어진 현무암 구릉지대의 한 마을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의 고라신과 벳새다를 향해 “화가 있을찐저”(마 11:21)라고 하시며 그곳 사람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셨다(눅 10:13).

 

1-3) 벳새다(Bethsaida)는 지명인데, 요단 강이 갈릴리 호수로 들어가는 부근의 강 동편에 있던 마을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빌립, 안드레, 베드로가 벳새다 출신이었다(요 1:44). ‘고기집’이란 뜻을 가진 이곳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고(눅 9:10), 소경을 고치셨다(막 8:22). 그러나 벳새다는 고라신의 사람들과 함께 ‘화가 있을 찐저’라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기도 했다(마 11:21; 눅 10:13).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베푸신 뒤 제자들을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다는 본문(막 6:45)에 근거하여 벳새다를 두 곳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4) 두로(Tyre)라는 지명은, 베니게의 중요한 해안 도시로 시돈에서 남쪽으로 40km, 악고에서 북쪽으로 45km 지점에 위치한 곳이다. 두로는 고대에 세워진 도시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BC 2800년경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베니게는 항해, 조선술이 발달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해양국으로, 베니게의 주요한 항구 도시인 두로는 국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사 23:8 참고).

 

두로의 주산물로는 자색 염료, 금속 세공, 유리 기구 등의 제조로 유명하였는데 두로의 배들은 애굽, 구브로, 로도스, 시실리,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들과 다시스를 항해하며 자색 물들인 옷감과 재목, 밀, 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여 두로에 엄청난 부를 가져왔다(대상 22:4; 겔 27:3; 사 23:18).

 

정치적, 지리적 면에서 두로는 지리적, 산업적 여건 때문에 힘 있는 나라들의 침입을 자주 받았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1세에게 공격 받았으며(BC 1094) 살만에셀 3세 때는 조공을 바쳐야만 했다(BC 853). 계속해서 디글랏 빌레셀 3세와 살만에셀 5세에 의해 공격을 받았으나 완전히 정복당하지 않고 결국 BC 722년 앗수르와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베니게가 정복당하고 에살핫돈에 의해 시돈이 정복당하자 두로의 바알 왕은 에살핫돈과 협정을 맺고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그 후 신바벨론 제국에 의해 계속 공격을 받았으며 느부갓네살이 13년 동안이나 두로를 포위하며 공격하자 두로는 이때 힘을 상실하였다. BC 539년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 두로도 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두로는 여전히 백향목과 다른 생산품들을 수출하며 무역과 해운업을 계속하였다. 알렉산더에 의해 완전히 정복당했지만 알렉산더를 이은 셀류쿠스 왕조 때에는 이전과 같이 무역과 산업이 활발한 도시가 되었다. BC 126년 두로는 다시 독립하였으며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당했을 때(BC 64)도 계속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예수님과 두로 땅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두로는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이방 땅이었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지적하시며 두로와 시돈을 언급하셨다(마 11:21-22;눅 10:13-14). 예수님은 두로가 이방 땅이었지만 가셔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셨으며(마 15:21; 막 7:24) 그곳에서 가르치셨다(막 3:8; 눅 6:17).

 

두로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두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무렵 견고한 성읍이었다(수 19:29). 그래서 이곳은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지만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당하지 않은 곳이었다(삿 1:31-32). 두로 왕 히람은 다윗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백향목과 목수, 석수들을 보내 다윗 왕의 궁전을 짓게 하였다(삼하 5:11).

 

솔로몬 때는 백향목과 잣나무를 보내 성전을 짓는데 도움을 주었고(왕상 5:1-10) 두로 사람 히람은 성전의 놋 기둥과 바다, 제사용 기물과 성전 기구들을 만들었다(왕상 7:13-47). 이에 대한 보답으로 솔로몬은 갈릴리 20개 성읍을 히람 왕에게 주었으나 그는 흡족해 하지 않았다(왕상 9:11-14). 히람은 솔로몬 왕이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자 바다에 익숙한 사공을 보내어 오빌의 금을 실어 솔로몬 왕에게 가져가도록 하였다(왕상 9:26-28). 두로 왕 엣바알은 그의 딸 이세벨을 아합과 정략 결혼하게 했으며(왕상 16:31) 이세벨은 두로의 우상을 들여와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빠지게 하였다(왕상 16:31-33).

 

요엘과 아모스에 의해 두로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맺은 형제의 계약(삼하 5:11; 왕상 5:1-12; 9:10-14)을 파기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에돔에게 노예로 팔아버린 죄를 지적받았다(암 1:9-10; 욜 3:5-6). 이사야와 예레미야, 에스겔에 의해서도 이들의 부와 교만 때문에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사 23:1-18; 렘 25:22; 27:3; 겔 26:1-6; 29:18). 그리고 이들의 예언대로 두로는 BC 332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약 3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노예로 팔려갔고 수천 명의 지도자들이 처형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때 섬이었던 두로를 공격하기 위해 길이 800m, 폭 60m의 제방을 쌓아 본토와 연결시켜 반도로 만들어버렸다. 초대교회 때 이곳에는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는데 바울은 전도여행 중 두로에 들러 7일 간 머물면서 제자들과 교제하였다(행 21:3-4).

 

두로는 신약 시대에도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동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였다. 636년 아랍에 의해 정복되었고 지금은 ‘수르’라는 작은 도시로 남아 있다. 시돈(Sidon)의 위치는 두로와 함께 지중해 연안의 최대 항구 도시이자 고대 베니게(페니키아)의 상업 도시였다. 베니게의 도시 국가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였으므로 때로 베니게를 시돈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두로에서 북쪽으로 3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지정학적인 이유로 앗수르, 바벨론, 바사(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 등에 의하여 차례로 지배를 받았다. 시돈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때 스불론과 아셀 지파의 북쪽 경계를 이룬 땅이었으나(창 49:13; 수 19:28) 아셀 지파가 이들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사 시대 때 시돈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압제하기도 하였다(삿 10:12).  

시돈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던 민족으로 시돈과 두로의 우두머리 신인 바알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기도록 영향을 미쳤다(삿 10:6). 솔로몬은 이곳 출신의 여인과 정략 결혼을 하여 이들의 우상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고(왕상 11:1, 5; 왕하 23:13) 아합이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알 신 숭배는 극에 달했다(왕상 16:31-33, 18:17-40). 이로 인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물들게 한 시돈의 멸망을 예언하였다(사 23:12; 렘 27:3, 6; 겔 28:21-22; 욜 3:4-6).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할 때에 시돈 사람들은 백향목을 벌목하여 욥바로 보냈으며(왕상 5:6)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을 할 때에도 시돈에서 백향목을 가져왔다(스 3:7).

 

신약 시대에는 시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사람들이 왔으며(막 3:8) 예수님도 시돈에 가셔서 병자를 낫게 하셨다(마 15:21).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에 이곳 시돈 땅에 들러 친구들에게 대접받았다(행 27:3)고 했다.

 

1-5) 베옷(Sackcloth)은 값싼 염소 털이나 낙타 털로 만든 거칠고 검은 옷이나 천을 말한다. 보통 이 천으로 만든 자루는 곡물을 담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창 42:25). 성경에서 베옷을 입을 때에 대해서 몇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5-1) 슬픔과 고통을 표현할 때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이 들짐승에 찢겨 죽은 줄 알고 베옷을 걸치고 슬퍼했다(창 37:34). 다윗도 한때 친구가 병들었을 때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기도해 주었다(시 35:13).

 

(1-5-2) 굳은 기도를 드릴 때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말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자기의 옷을 찢고 베옷을 두르고 주의 성전으로 들어갔다(왕하 19:1-2). 다니엘은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금식하면서 베옷을 걸치고 재를 깔고 앉아서 하나님께 간구했다(단 9:3).

 

(1-5-3) 죄를 회개할 때

아합은 엘리야의 예언을 듣고 굵은 베옷을 걸치고 회개하였다(왕상 21:27). 신약 시대에서도 베옷을 입고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마 11:21). 여기 고라신은 가버나움의 북서쪽 약 4km쯤 떨어진 도시로 예수께서 가장 많이 권능을 행했던 곳이고, 벳새다는 고기 잡는 집이란 뜻으로 갈릴리 바다 북동연안 게넷사렛 평지(막6:53)에 위치한 성읍으로 안드레, 베드로, 빌립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요1:44)

 

예수님의 열정과 애정을 쏟아 부은 이 고을 들이 육신의 병이나 고침 받는데, 관심이 있을 뿐,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무반응, 무관심한 곳들이었다. 차라리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회개 하였으리라’ 이곳은 팔레스타인 북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 들이다. 이곳은 바다를 끼고 있어 무역이 활발했고, 그래서 꽤 부자동네라 할만 했다. 그래서 이곳은 우상이 성행했고,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도시로 유대사회에서는 죄악의 대명사처럼 여긴 지역이었다. 여기를 대비해서 책망하신 것이다. 인간사회의 타락한 죄보다 더 큰 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내신 독생자 예수를 영접하지 아니 한 죄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22-24)

 

(1-5-4) 심판 날(Day of judgment)은 하나님께서 행악자들을 영원한 형벌에 처하실 마지막 날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를 말한다(마 16:27; 행 17:31; 롬 2:16). 예수님은 심판 날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다(마 10:15; 11:22-24; 12:36-42; 눅 10:14).

 

(1)심판 날(벧후 2:9; 요일 4:17)은

(2)여호와의 날(사 2:12; 13:6-9; 욜 2:1, 11, 31; 3:14; 암 5:18; 습 1:7-10; 스 14:1 말 4:5; 행 2:20; 벧후 3:12; 계 6:14),

(3)주의 날(고전 1:8; 5:5; 고후 1:14; 빌 1:6; 살전 5:2-3; 살후 2:1-2; 벧후 3:10),

(4)그리스도의 날(빌 1:10; 2:16),

(5)그 날(딤후 1:12, 18; 4:8; 히 10:25),

(6)권고하시는 날(벧전 2:12)로도 표현되었다.

 

2) 애절한 초청(26-30)

‘천지의 주제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 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5-26)

 

2-1)감사(Praise, Thanks)는 하나님께 대해 백성들이 가지는 태도이다.

(2-1-1)구약의 감사에 대해서 히브리어로는 ‘야다’(yadah)로 ‘고백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찬양하다, 감사하다’의 의미로 쓰일 때 목적어는 하나님이다(창 29:35; 스 3:11; 시 33:2; 사 12:4).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감사할 때의 동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에 있어서 항상 성실하신 분이기에, 이스라엘 백성 쪽에서 언약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감사였다(시 57:9; 107:8; 138:2).

(2-1-2)신약의 감사에 대해서 헬라어로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인데 이 단어는 두 번(눅 17:16; 롬 16:4)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바울 서신 서문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등장하는데,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고전 1:4), 로마 교회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롬 1:8),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살전 2:13),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 전함에 동참한 것(빌 1:3-7) 등에 대해 감사했다. 한편 ‘감사드리다’라는 말은 식사 전에 드리는 축복기도나 성만찬의 용어로도 사용되었고(고전 11:24) 2세기에는 ‘유카리스티아’란 말이 성만찬 예식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통용되었다.

 

‘이것’은 복음(진리)을 말하고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말은 분별력이 있고, 똑똑하다는 말로 번역한 성경들도 있다. 여기의 지혜(σοϕϖν)란 말은 지식이란 말과 병행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롬15:14, 고후10:5) ‘슬기’란 말은 잘 판단하고, 무슨 일이든 지혜롭게 잘 처리하는 능력을 이른 말이라 한다. 그래서 앞의 지혜는 지식으로, 뒤에 나온 슬기는 지혜에 해당 된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는 ‘감추시고’란 말씀이다. 정리를 하면 지식이 있고, 똑똑 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다른 것이다. 여기서 감추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본래 계시란 뜻이 감추어 있던 것을 열어 보여 준다. 혹은 비밀에 있던 것을 폭로한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분으로부터 계시가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계시의 책이라 한 것이다. 한데, 이 계시를 지식이 많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더 고상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그전에 베웠던 지식들은 배설물로 여겼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 것만,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일로 돈도 시간도 허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배워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란 거의 100% 삯꾼이 된다. 지나친 표현인가? 하지만 생각할 문제다. ‘하나님의 일’(요 5:28-29)이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고 바르게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7-)

(2-1-3) 아버지(Father)라고 번역되는 대표적인 단어로는 히브리어 ‘아브’(ab), 헬라어 ‘파테르’(pater)가 있다. 성경에는 여러 유형의 아버지가 나오며, 육신의 아버지 외에도 제사장이나(삿 17:10; 18:19), 왕(삼상 24:11), 주인(왕하 5:13), 선지자(왕하 2:12; 13:14) 등이 아버지로 불렸다.

 

(1) 하나님 아버지(God the father)

하나님 아버지는 성자, 성령과 구별할 때 삼위 중 첫 번째 분이신 성부 하나님을 말한다. 인간 아버지가 후손들에게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되듯(창 17:5; 롬 4:11), 하나님 아버지 역시 성경 여러 곳에서 창조주로 묘사되었다(행 17:26; 히 12:9; 약 1:17).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모든 인류의 아버지시다(행 17:26). 본질적인 면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요일 4:19), 특별히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실 뿐 아니라(엡 1:17)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가족이 된 자들에게 영적인 아버지가 되신다(롬 8:15).

 

(2) 신자들의 아버지

신약의 저자들은 하나님을 신자들의 아버지로 묘사했는데, 이는 예수님과 똑같은 의미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신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며(마 11:26; 요 20:17; 롬 8:15; 엡 2:18), 성령에 의한 양자의 영을 받게 되어 한층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롬 15:6).

 

(2-1) 소원(Desire)이란 마음에 바라는 바를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소원을 성취하는 분이시며(시 37:4; 145:19) 하나님을 기뻐할 때 소원을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하신다(시 37:4).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예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멍청한 사람들이 있다.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28-30)

 

(2-2) 마음(Mind)이란, 사람의 지식, 감정, 의지 등의 정신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을 말한다. 성경에서 마음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이자 인간 내면세계의 중심지이며 윤리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특별히 히브리인들은 정신과 육체를 구별하지 않고 마음을 인간의 가장 내부에 있는 것으로 알고 의지나 감정뿐 아니라 지적 능력이나 육체적인 능력의 원천으로 생각했다.

 

(2-3) 온유(Gentle)란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말한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와’(anawah)는 자기를 낮춤, 괴롭힘을 당함, 겸손함이란 뜻을 지닌다(민 12:3). 온유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다(갈 5:23). 온유한 자는 타인에 대하여 관대하며(마 18:21-22), 죄인에 대해서 회개할 때까지 인내하는 자이다(벧전 2:19-25). 즉 주님의 마음을 본받은 자를 가리킨다(마 11:29).

 

(2-4) 겸손(겸비)는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알고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버리고 낮은 데 처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마음의 자세를 말한다(대하 33:12; 34:27). 이것은 성경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성도의 주요 덕목 중 하나이다(잠 15:33; 18:12; 22:4; 롬 12:3; 빌 2:3; 골 3:12; 벧전 3:8). 겸손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바라는 것이다(미 6:8).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고(사 57:15)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며(시 10:17)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잠 3:34; 약 4:10).

 

예수님은 자신이 겸손한 분임을 말씀하셨고(마 11:28-30)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18:1-4). 바울 역시 예수님의 겸손해지심을 말하며(고후 8:9; 빌 2:1-11) 믿는 자들의 겸손을 명령하고 있다(빌 2:3-4; 롬 12:10, 16; 고전 13:4-6). 베드로도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겸손하라고 권면하고 있다(벧전 5:5-6).

 

(2-5) 멍에(Yoke)란 쟁기나 수레를 끌기 위해(삼상 6:7) 소나 나귀 등의 목에 가로 얹는 막대를 말한다(민 19:2). 대개 멍에는 두 마리의 동물이 한 짝이 되어 끌게 하여서 ‘한 겨리’와 같은 말로 쓰였다(왕상 19:19, 21; 욥 1:3; 42:12). 멍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체메드’(tsemed)는 멍에로 번역되기도 하고(렘 51:23) ‘한 겨리’로 번역되기도 하였다(삼상 11:7; 왕상 19:19, 21). 그리고 멍에란 말은 때로 황소 한 겨리가 하루에 밭을 갈 수 있는 넓이를 이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삼상 14:14).

 

모세 율법은 소와 나귀를 겨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신 22:10). 힘의 차이가 있는 동물들이 한 멍에를 메는 것을 금한 것이다. 멍에의 속성 때문에 멍에란 말은 속박, 예속(왕상 12:4; 딤전 6:1), 정치적 굴복(사 10:27; 렘 5:5), 고역(신 28:48; 렘 28:13), 죄 짐(애 1:14), 율법의 제한(행 15:10; 갈 5:1)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멍에보다 우상의 멍에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렘 2:20; 5:5) 그들은 ‘속박의 멍에’(호 11:1-7)를 지게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분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기 때문에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그분에게 배우라고 하셨다(마 11:29-30). 바울은 성도들에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였다(고후 6:14).

 

왜? 예수님께로 오면 편히 쉴 수 있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여기서 우선 두 가지만 생각해 보자.

 

(1) 첫째는 편히 쉰다는 말씀을 생각해 보자,

구약에서는 ‘안식일’이란 것이 있다. 이 말뜻은 ‘편히 쉬는 날’이란 뜻으로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게 했다. 여기에 장로들의 규례가 첨가되어 이 날은 음식도 만들어 먹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마침내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이 돌이어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예수가 오셔서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해준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신이 실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안식일 날만 골라가면서 병자를 고쳐주시는 일을 하셨다. 그래서 이 일로 시비가 붙었을 때 예수께서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12:8)고 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율법의 요구를 완전하게 완성하는 자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주일성수(주의 날을 거룩하게 지킨다?) 하는 자들이 아니라 1년 365일이 그리스도의 날(주일 날)로 사는 자들이 된 것이다.

 

(2) 두 번째는 십일조에 관해서이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받쳐라’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 바르게 알아야 하는가? ‘십일조는 율법이 정한 것(느 12:44)이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온 것인가를 아는가? ’율법에 속한 자는 저주 아래 있다’라고 했고(갈3:10) ‘율법(할례)아래 있고 자 하는 자(율법을 하나라도 지키려는 자)는 율법의 전체를 행해야 할 의무를 가진 자’라 했고(갈 5:3, 약 2:10)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요, 은혜에서 떨어 진 자라’ 한다.(갈5:4)

 

예를 들어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말했다. 앞에서부터 언급해 온 것이지만, 왜 이렇게 신종 율법아래 사람들이 묶여 버렸는가? 그것은 지금의 교회구조가 우리로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교문사 발행 ‘기독교대백과사전 제6권 275쪽’에 보면 이 구조는 사탄이 만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당황하지 말고, 변호하려하지 말고, 신중하게 검토부터 하기를 권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자유인이 되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진리는 곧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요(요 17:17)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진리다.(요 1:14, 14:6) 그리고 성령이 진리(요일 5:7)라고 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진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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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리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고 선언하면서 자유인이 된 것을 바울은 외쳤다. 예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으로 율법의 요구를 충분히 응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애절하게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문들이 열려서 주님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일군들이 각 지역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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